11월 셋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상태바
11월 셋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3.11.15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신명기 16:15~17
찬송: 591장

인생은 모든 것이 감사뿐입니다. 그럼에도 세상 재물에 매우 도취되어 그것을 얻는 것이 사람의 목표가 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감사는커녕 좌절과 실망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며 물질적인 것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인간의 물질적 만족을 뛰어 넘는 즐거움을 주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소출을 통해서 즐거움을 주십니다. ‘소출’은 다른 말로 ‘소득’입니다. 소득은 생산적입니다. 생산은 상당한 투자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께 신령한 투자를 하면 소출의 복을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손으로 하는 일에 즐거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손을 주셨습니다. 손에는 ‘받는 손’과 ‘주는 손’이 있습니다. 받는 손은 구차합니다. 그러나 ‘주는 손’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성도의 영혼에 즐거움을 주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습니다. 늙으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기력이 쇠해지며 기억력도 상실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영혼은 나이를 안 먹고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이게 영혼의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은 이 외에도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최선을 다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주님께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희생을 통한 열매

요한복음 12:24
찬송: 279장

오늘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 한 알의 밀알의 비유를 통해서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한 개인의 중요성입니다. 개인의 중요성이란 말은 개인의 인격과 더불어 삶, 자세, 습관, 사상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회 구성 속에 한 개인의 창조성 결여와 책임감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중요성을 발견하지 못할 때 열심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하나는 만남의 중요성입니다. 한 개인은 자신의 존재의 중요성과 자신의 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만남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즉 한 알의 씨앗이 옥토와의 만남이 없다면 이 씨앗은 그저 한 알 그대로 있고 자신의 가치성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만남이 있겠지만 참 만남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도 나 자신의 가치성을 알아주는 사람과 만남이 중요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희생의 중요성입니다. 이 씨앗은 땅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썩어짐이 있을 때 그 씨앗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희생이요 헌신이며 최선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만남 올바른 만남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희생이 없다면 많은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온전히 알고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열심을 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의 가치를 알고 계시는 주님께 열심을 품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정말 기다립니까?

누가복음 12:45~50
찬송: 175장

나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다시 오겠다고 하시며 떠나신 예수님은 나의 신랑입니다. 나는 그분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까죠? 얼마나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나요?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왕의 동생들을 구해낸 충신입니다. 일본에 잡혀간 왕의 동생은 미사흔이었습니다. 박제상은 그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붙잡혀 화형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끝까지 남편을 기다리다가 끝내는 보지 못하고 죽어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울산 치술산 망부석 전설입니다.
나의 신랑되신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깨어 기다리라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등불을 켜고 기다리라고, 문을 두드리면 바로 열어줄 수 있는 자세로 언제든지 오면 맞이할 수 있는 상태로 기다리라 했습니다. 늦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여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시며 경고도 하셨습니다.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면 축복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라고 하고선 주님은 떠나셨습니다.
“다시 올 것이니 꼭 기다리라”고 신신당부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어떻게 기다리고 있습니까? 다시 만날 주님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내 신앙을 깊이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을 사모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마음을 주옵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3가지

미가 6:6~8
찬송: 95장

미가 선지자의 시대 배경은 현시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거짓 목회자)가 자기의 유익을 위해 진리를 왜곡하여 거짓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고 재물을 요구하여 독버섯같이 퍼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거짓된 죄악의 시대에 과연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흠 없는 송아지 번제물이 아니라 ‘공의’입니다. 모세가 광야 40년 인생에서 가나안땅에 입성하지 못한 것은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하며 하나님이 들으시고 노하사 여호수아와 갈렙을 필두로 하여 광야에서 출생한 신세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리라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위해 충성하는 자는 구원을 얻으며 성전에 기둥이 되리라”(막 8:35)
둘째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이 아닌 ‘인자’입니다. 많은 재물을 드리는 것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자녀이며 예수님 제자라고 하였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지옥이 아닌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길임을 믿습니다.
셋째 내 몸의 열매가 아닌 ‘겸손’입니다. 겸손은 겨자씨같이 작은 모습이 될 때 큰 나무가 됩니다. 반대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상대를 생각하지 않으며 협력하지 않고 모든 공을 자기에게 돌리며 사단의 동역자를 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죄악이 가득 차 있는 악한 시대에 하나님을 찾아 충성하고 서로 사랑하여 겸손한 하나님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배에 오르시면

누가복음 5:1~11
찬송: 535장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쓰디쓴 실패를 경험하고 일을 마무리하려고 할 때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무리에게 복음을 증거 하신 후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한 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 결과는 잡은 것이 심히 많아 다른 배까지 오게 하여 두 배에 잠길 정도로 채우게 되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 베드로는 인생의 대변혁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을 때, 얼마든지 예수님을 배에서 내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베드로의 기분은 좋지 않았고 모든 것이 귀찮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도 ‘고기잡는 전문가는 나’라며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선택은 예수님을 자신의 배에 오르게 했고, 예수님의 말씀에도 순종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오르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의 두드리심에 이렇게 답합시다. 예수님! 나의 배에 오르셔서 나를 온전히 지휘하여 주옵소서!

•오늘의 기도
예수님! 나의 배에 오르셔서 나를 온전히 지휘하여 주옵소서!
 

회복의 성취

예레미야 33:7
찬송: 435장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회복시키시기 원하실까요? 구체적인 회복의 내용이 10~18절까지 나와 있는데,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가장 첫 번째로 예배의 회복입니다. 
예배 요소 중 중요한 것이 성전(건물)과 사람(예배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성전은 없고, 사람이 있는 경우, 반면에 성전은 있지만 사람이 없는 경우가 나옵니다. 먹고살기 바빠서 성전에 사람이 없다고 학 1:4~6에 나와 있는데, 그 인생은 아무리 수고해도 수확이 없음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더 중요한 건마당만 밟는 성도가 가득 찬, 즉 성전은 있으되 진정한 예배자가 없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마당만 밟는 예배자들의 모습을 애 2:11~12에서는 어머니 품에서 영혼이 떠나버린 자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참혹합니까? 그렇지만 그 뒤에 하나님의 대안이 나옵니다(18~22).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리고 눈동자를 쉬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부모들의 임무입니다. 마당만 밟는 내 신앙으로 인해 자녀의 영혼이 죽진 않았는지 뒤돌아보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들이 됩시다. 그럴 때 자녀들의 예배가 회복되고, 더불어 내 예배도 회복되는 놀라운 회복의 성취가 기도하는 가정마다 다 일어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눈물을 강처럼 흘려 눈동자를 쉬지 말고 기도하여 잃었던 모든 것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