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양화진과 절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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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양화진과 절두산
  • 임문혁 장로
  • 승인 2023.11.1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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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혁 장로
임문혁 장로/서울 아현교회 원로장로·시인·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얼마 전 우리 교회 남전도회원들과 함께 양화진과 절두산을 다녀왔다. 우리 교회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있고, 양화진과 절두산은 마포구 합정동에 있어 가까운 거리라서 신앙생활이 좀 느슨해지거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면 나는 이 두 곳을 가끔 찾아가곤 한다. 양화진에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사진)이 있고, 절두산에는 ‘천주교 순교 성지’가 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옛날 양화 나루터가 있던 곳인데 나루터를 수비하는 진영이 양화진이다. 이곳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 145명이 안장되어 있다. 선교사들은 당시 변방이던 ‘코리아’에 복음의 빛을 나누기 위해 헌신했다. 또 이들은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여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하였고, 이들 일부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이 묘역에는 우리가 잘 아는 대한매일신보 발행인 어니스트 베델(배설), 장로회 선교사이자 연세대학교 설립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배재학당의 설립자인 헨리 아펜젤러, 이화학당의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의 설립자 더글러스 B. 에비슨, 감리교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과 한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호머 헐버트 박사, 대한제국 국가를 작곡한 프란츠 에케르트 같은 분들이 안장되어 있다.

얼마 전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연설할 때 언급했던 로제타 홀 선교사 가족의 묘도 있다. 로제타 홀 선교사는 의료선교사로 남편과 딸을 잃은 고통 속에서도 45년 동안 한국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겼다. 아들 셔우드 홀은 해주에 요양원을 세워 결핵환자들을 치료하였고,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하여 결핵에 대한 계몽운동도 벌였다. 양화진에는 3대에 걸쳐 6명(선교사 4명)의 홀 가족이 합장되어 있다.      

묘원 안에는 선교 100주년 기념교회가 있고, 그 앞쪽에 ‘양화진 홀’이 있는데, 양화진 홀은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교사들의 삶을 기리고 재조명하는 공간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어떤 이들이었으며, 왜 조선을 찾았는지, 하나님께서 이들을 조선으로 이끌기 위해 어떻게 섭리하셨는지, 이들이 조선에 와서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 그리고 양화진의 모습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해왔는지 등의 이야기들이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사회를 살펴보면, 이분들을 통해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맺은 열매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기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힌 선교사 한 분 한 분의 삶은 선교 200주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한국 교회의 소중한 밑거름이다. 이곳을 한국 교회의 성지로 가꾸고 지키는 일은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귀한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오면 아들 가족 4명을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보낸 나는 감회가 남다르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희생 봉사한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렇게 복음화 되고 신앙의 꽃이 피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복음에 빚진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러 그 복음의 빚을 갚는 나라 백성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절두산 순교 성지’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당산철교 근처에 있는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 성지이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묘원에서 걸어서 곧장 이동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잠두봉(蠶頭峰)으로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예로부터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나룻손들이 그늘을 찾던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도성에서 김포에 이르는 나루터 양화진을 끼고 있어 더욱 명승을 이루었던 곳이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로 약 8,000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형을 당하여 한강에 버려졌다 하여 ‘머리를 자르는 산’이라는 뜻으로 절두산(切頭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절두산에서 처형된 신자들은 대부분 프랑스 신부들과 교류한 일이 있거나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 함대와의 관련이 있는 신자들이었다.

절두산 순교 성지에 오면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순교로 지킨 신앙의 유산을 우리가 물려받았다는 것과 예수님의 대속의 피가 우리에게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의 신앙생활이 좀 느슨해지거나 긴장감이 떨어질 때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과 절두산 순교 성지를 찾아 마음을 다잡고 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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