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듯 우리의 부활도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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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듯 우리의 부활도 믿어야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3.10.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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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_ 30) 성찬이 주는 의미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가장 서글펐던 것은 일상이 사라진 것인데, 당시 사라져도 괜찮은 일상으로 가장 먼저 세상 사람들에게 지목되었던 것이 교회의 예배였다. 그리고 이런 요구에 우리 모두가 다 너무 쉽게 동조하고 타협하였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코로나 시절 예배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말씀 중심의 개신교 예배에서는 한 마디로 설교 듣는 것이 예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설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코로나 시절 설교 한편 시청하는 것이 예배를 드린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위 중의 하나다. 하지만 예배라고 하는 것은 설교 듣는 것으로 대치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배를 설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의 전달이요 지식의 전달이라고 생각하는 합리적 사고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한 것도 무시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인 면에서의 의사전달만이 있는 것이 예배는 아니다. 의지적이고 감정적인 것을 포괄하는 보다 전인적인 면에서의 예배에 대한 조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예전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참여를 강조한다. 예배의 방관자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예배의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예전에 대한 강조는 우리가 몸을 가진 구체적인 실존자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물론 로마서 12장 1절의 우리의 몸으로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한다. 주일의 예배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한때 주일예배를 강하게 강조했었다. 

그러다 보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주일의 예배보다 중요한 것이 주중에 삶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강조하였다.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에는 반대로 주일날 드리는 예배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코로나를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의 시대는 우리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보다 주일날 함께 모여 드리는 공예배를 더 강조해야 할 시대라고 할 수도 있다.

의외로 성경은 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어떤 사람들은 소마(sōma, body)와 사륵스(sarx, flesh)를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sarx)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되어 있다. 물론 성경은 우리의 육적인 죄된 생각에 대해 정죄한다. “육신(sarx)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하지만 우리의 몸에 대해 성경은 그것이 구약의 성전을 대치한 것이라고까지 말씀하고 있다.

기독교는 그런 면에서 매우 물질 긍정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를 통해 은혜를 전달하고 세례의 물을 통해 은혜를 전달하는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몸의 부활을 믿는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몸으로부터의 속량(redemption from the body)이 아니라 몸의 속량(redemption of the body)이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 8:23).

우리는 매 주일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한다. 사도신경의 끝부분에서 우리는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정작 별다른 생각 없이 사도신경을 눈 감고 외우다 보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신학교에 다니는 신학생들 가운데 그런 말이 사도신경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육체 부활(bodily resurrection)에 대해 좀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셨듯이 우리 모두는 마지막 날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다(고전 15:2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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