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거울처럼
상태바
[은혜의 샘물] 거울처럼
  • 임문혁 장로
  • 승인 2023.10.19 0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문혁 장로
임문혁 장로/서울 아현교회 원로장로·시인·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우리 교회 현관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려 있다. 본당 앞 벽에도 커다란 거울이 붙어 있다. 교회에 드나들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 모양이며 화장 상태며 얼굴 표정까지 비춰 보며 점검하게 된다. 그러면서 문득 저 거울이 내 속마음까지 꿰뚫어 비춘다면 어찌할까 두려운 생각에 멈칫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거울이란 참으로 유용하고 고마운 물건이기도 하지만 정말 두려운 물건이기도 하다.

인류는 언제부터 거울을 사용했을까?  아마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가 아니었을까. 우리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인이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올 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가지고 내려왔는데, 그 세 개가 검(劍)과 거울과 방울이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옛 서양의 설화에는 나르시스라는 미소년이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는 수선화 전설도 있고,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라고 묻는 신데렐라 이야기 같은 것을 보면 거울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랜 옛날에는 단단한 돌을 곱게 갈아 윤을 내어 만든 돌 거울을 사용하다가 청동기 시대에는 구리거울을 사용했을 것이고, 그 때의 거울은 사물을 선명하게 비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 고린도 전서 13장 12절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와 같은 표현이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 유리의 뒷면에 수은을 발라 값 싸고 손쉽게 거울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우리 생활 주변 이곳저곳에서 거울은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더구나 유리의 굴절과 거울의 원리를 이용하여 현미경과 망원경까지 만들어냄으로써, 인류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미세한 것까지 보아내고, 아주 먼 우주의 별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돌거울, 구리거울, 물거울, 유리거울이 유형의 거울이라면, 마음의 거울, 역사의 거울, 말씀의 거울은 무형의 거울일 것이다. 물거울이 잘 보이려면 파도가 없이 잔잔해야 하듯이 마음의 거울을 잘 보려면 마음이 잔잔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 거울은 겸손한 마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말씀의 거울은 두려운 마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현미경과 망원경이 사물의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곳까지 샅샅이 비춰 드러내듯이 말씀의 거울이 인간의 심령 깊은 곳까지 샅샅이 비추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일 것인가.

나는 오늘도 교회 현관을 들어서면서 본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거울을 본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얼굴 표정을 가다듬고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거울이 너무 정직해서 두렵기도 하지만,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거울은 우리가 잘 모르는 덕을 지니고 있다. 거울은 어쩌면 하나님을 많이 닮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미추(美醜)와 선악(善惡)을 다 꿰뚫어보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타내지 않는다. 자기 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차별하지도 않는다. 빈부귀천(貧富貴賤) 가리지 않고 담쑥 품어 안아준다. 누군가 와서 걸으면 같이 걷고, 같이 춤추고, 같이 울고 웃는다. 그러다가 그가 등 돌리고 떠난다 해도 아무 말 없이 고이 보낸다. 그가 떠난 가슴에 구멍이 숭숭 나겠지만 그 구멍 결코 드러내지 않고, 텅 빈 허공으로 남아 혼자 기도한다.

나는 이러한 거울에게서 삶의 자세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려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