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참 잘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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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참 잘한 일들
  • 이복규 장로
  • 승인 2023.09.0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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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70여 년 살아오면서, 잘한 일 몇 가지가 있다. 인생을 다 살아야 완전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지금 생각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첫째, 중학교 3년 내내 만화방에 빠져서 산 일, 지나고 보니 잘한 일이다.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한 나머지, 수학과 영어의 기초가 부실해 평생 고생하고는 있지만, 그 후로는 일체의 잡기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살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정신을 차려 학업에 몰두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 덕택이다. 사고총량의 법칙이 있다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일생 사고 칠 것을 중학교 3년간 한꺼번에 쳤는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어려서 착실히 지내다 나이 먹어 늦바람이 나서 방황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지 않나 싶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내 아들도 그랬다. 중학교 때 오락이며 컴퓨터게임에 몰두하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저러다 중독이 되어 폐인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지만, 3년 내내 만화로 허송세월한 나도 개과천선해 곧잘 지내고 있으니 어쩌랴, 기도하며 기다려 주었다. 다행히 중독에 빠지지 않고, 아예 컴퓨터와 게임을 전공으로 삼아 공부해,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어 게임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환갑 무렵에 동네 초등학생들을 모아, 글쓰기와 토론을 3년간 매주 지도한 적이 있다. 첫 시간에 내가 중학교 때 만화에 빠졌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들이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어릴 때 만화에 빠져야 교수가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해 주었다. “공부도 하면서 만화를 봤어야 해요. 그랬다면 더 유능한 교수가 되어 있을 거예요. 여러분은 꼭 그래야 해요.”

둘째, 박사과정 공부를 하다가 그만두고 중등학교 교원임용고사 준비하다가 다시 박사과정 공부를 마무리한 것도 잘한 일이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하던 일은 마무리를 지어야지, 만약 임용고사에 합격해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된다 하더라도, 학생들한테 무엇이라 가르친단 말인가? 하던 일은 반드시 마쳐야 한다고,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적어도 이 말은 못하지 않겠는가? 내가 실천하지도 않은 일을 뻔뻔하게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오직 이 이유 때문에, 다시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공부를 마치기는 했으나, 교수가 된다는 기약은 없었다. 하지만 박사과정 수료 단계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모교에 자리가 난 것이다. 같읕 전공의 은사님이 다른 대학으로 이직하면서 채용 공고가 났고, 응모해 마침내 임용되었으니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때 기적 같은 기회가 왔더라도, 만약 박사과정을 밟지 않았다면, 자격 미달이라 불가능할 뻔했으니 아찔하다.

물론 교사도 교수도 다 소중한 직업이다. 다만 내 경우는 가르치는 일보다 연구하는 일이 더 즐거운 체질이라, 교사보다는 교수가 더 어울렸다. 대학에서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마음껏 논문과 책으로 쓰고, 그 참신한 연구 결과를 학생들에게 신바람 나게 강의하다 은퇴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 그러니, 힘들지만 박사과정 공부를 마무리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셋째, 고졸 후 상경해 어느 교회에 출석할까 하다가, 개척교회인 지금의 우리 교회에 다니기로 결정한 일도 참 잘한 일이다. 북아현동에 오래 되고 큰 교회도 여럿 있었지만, 아현동 산동네의 우리 교회를 다니면서, 참 많은 훈련을 받았다. 교인이 30여 명밖에 안 되는 교회이다 보니, 찬양대, 교회학교, 청년회 모든 부서에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고, 그 모든 일에 쓰임을 받았다.

지방에서 올라와 외로운 타향살이지만, 우리 교회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작은 교회다 보니 가족같이 친밀한 교제 가운데, 정을 느끼며 지냈다. 무려 8년간이나 청년회장직을 맡았다. 대형교회에는 인물이 많아, 어지간한 학력이 아니면 구역예배 리더 되기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30명 교회에서 500명 교회로 성장하기까지, 나도 장로가 되어 섬기고 있으니, 이 또한 참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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