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 '승부사들이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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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 '승부사들이 없는 세상'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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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설목사 / 문래동교회

며칠 전 요즘 대학생들이 사회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 대화를 해보았다. 버스를 함께 타고 가는 중에 새로 개편된 교통정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랬더니 “안 좋게 본다”고 했다. 그리고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시장이 취임 1주년 기념으로 청계천 다리를 없앴고, 취임 2주년 때는 교통정책을 바꾸었다. 취임 3주년에는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해보니 말이 되는 듯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 의식구조의 현주소라는 착잡한 느낌이었다. 또한 여전히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지 못한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직도 물리적인 투쟁을 통해 의사를 전달해서 자기 권리를 보장받으려고 한다. 여전히 극단적인 방법에 의존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이다. 분신자살, 단식 투쟁 등 머리를 깎고 붉은 깃발에 투쟁 의지를 담은 거친 구호들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이른바 ‘승부사’가 돼야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다고 보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 있다.

승부사가 지배하는 사회는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승부사는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 싸우지만 전략과 전술의 한계가 올 때는 패하기도 한다. 승부사의 매력이 여기 있다. 영웅이 될 수 있는 가능성과 비참한 패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반씩 열려 있기 때문이다. 승부사의 게임은 일종의 도박행위이다. 그런데 승부사들은 자기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즉 위기가 올 때마다 이런 방법을 계속 사용한다. 그러나 극단적 갈등구조를 만들고 대결시키는 승부사의 전략은 항상 사용하면 안 된다. 이것은 대화와 협상의 기술이 없는 지도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하자면 무식한 방법이라는 말이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대화와 타협이라는 고상한 방법은 필요 없다. 그냥 독불장군처럼 울고 떼를 쓰면 된다. 눈치볼 것도 없고,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고려할 필요도 없다. 그냥 지신이 원하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얻어내기만 하면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승부사가 된 사람들과 승부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국민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 무엇이든 이득을 얻으려고 무분별하게 제기하는 민원들, 투쟁의 강경한 구호 등 나름대로 이유야 있겠지만 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안감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 국민들은 과거 독재정권의 권위주의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 아직도 진정한 자유와 인권의 바탕 위에 선 사회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권위주의의 탈을 쓰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 없는 사회는 독재사회다. 그러나 승부사들은 타협을 변절과 비겁한 행동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나하고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는다. 바뀔 때는 한꺼번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치권의 쟁점은 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문제인 듯 하다. 이것들은 승부사가 되어 처리할 일이 아니다. 국민들의 삶의 문제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정치 생명을 가늠하는 잣대로 이용되고 있는 느낌을 받고 있다. 정치인들끼리 약점을 숨겨주고 득과 실을 주고받는 정치적 거래가 아니기를 바란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들의 삶의 문제를 여당이나 야당의 주장대로 가게 할 이유가 없다. 국민들은 이들에게 5년, 혹은 4년 간의 임기를 보장했을 뿐이다. 영원한 주인이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승부를 건다면 어떤 세력이건 패배를 당한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승부사들의 짜릿한 승리의 함성보다 신뢰가 바탕이 된 행복한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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