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이어걷기, 이어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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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이어걷기, 이어살기
  • 임문혁 장로
  • 승인 2023.08.1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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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혁 장로
임문혁 장로/서울 아현교회 원로장로·시인·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어머니가 구두 한 켤레를 주워오셨다. 내 발보다 한 치수 위였지만 발을 넣으니 담쏙 끌어 담는다. 밑창이 바깥쪽으로 좀 닳긴 했어도 아직은 한참 더 신을 수 있을 구두였다. 버린 주인이 미웠을까 아니면 새 주인이 그리웠을까, 내 발을 맞는 품이 사뭇 살가웠다. 옛 주인은 왜 이 구두를 떠나보냈을까? 구두 벗고 맨발로 세상 밖으로 떠난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교차했다. 어머니는 그냥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 가져오셨다고 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그냥 공으로 신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구두를 신고 이제부터 내가 길을 걷는다면 그 걸음은 옛 주인이 그렇게 걷고 싶었지만 다 걷지 못했던 길을 내가 대신 이어 걷는 길이 되어야 할 것이었다. 콧등이 시큰해졌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마침 저녁노을이 유난히 붉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구두의 지난 주인은 어쩌면 예수님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신으시던 구두를 이 땅에 벗어놓고 맨발로 세상 밖으로 떠나신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이제부터 이 구두를 신고 걷는 길은 예수님이 걸으시다가 남겨놓으신 그 길을 대신 걷는 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던가?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다.(마 4:23) 세리와 죄인들과 창기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막 2:15) 섬김을 받기보다 도리어 섬기는 일에 힘쓰시며 이 일을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막 10:45)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주님의 뒤를 이어 예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며 순교하면서까지 사랑을 실천하였다. 사도행전은 이런 제자들의 발걸음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 사도들이 걸었던 길, 초대교회 성도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어감으로써 우리의 사도행전을 이어서 써나가야 마땅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날개도 아니고, 모자도 아니고, 한 켤레 헌 구두를 내게 물려주시면서 항상 나와 함께하시고, 세상 곳곳으로 이끌어 가시며, 남은 길을 걷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라면, 나는 예수님이 넘겨주신 구두를 신고 예수님이 남겨 놓으신 길을 걸어가야 하리라.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노을이 유난히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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