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새로운 세계 발견한 바르트, 자유주의와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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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새로운 세계 발견한 바르트, 자유주의와 결별
  • 박찬호 교수 백석대
  • 승인 2023.08.1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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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22) 목회경험과 신학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칼 바르트(1886~1968)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던 1919년 출간된 <로마서 주석, Der Römerbrief>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이 주석서의 재판 발간과 함께 바르트는 박사학위도 없는 상태였지만 1921년 괴팅엔 대학에서 교의학과 신약주석학 교수직을 제안받아 스위스를 떠나 독일 대학의 신학 교수가 되었다.

이후 바르트는 1925년부터는 뮌스터에서, 그리고 1930년부터는 본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1935년 히틀러에 대한 충성 맹세 서명을 거부하여 독일에서 추방되었고 자신의 고향인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1962년 은퇴할 때까지 신학을 가르쳤다.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은 I-1권이 1932년에 발간된 이후 마지막 권인 IV-4권이 1967년에 발간될 때까지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에 이루어진 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론을 시작으로 신론, 창조론, 화해론에 이어 구속론을 저술하려 했던 원래의 계획은 V권에 해당하는 구속론은 시작하지도 못한 채 미완성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여러 신학자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우리나라에서도 13권의 번역이 2017년 완료되었다.

바르트는 교수가 되기 이전인 1909년 제네바 교회의 부목사가 되었지만 이내 담임목회지를 찾아 떠나게 되었고 1911년에서 1921년까지 스위스의 산골 자펜빌의 목회자로 사역하였다. 자펜빌에서 고개 하나 너머에 있는 로이트필에는 마부르그 대학 동창으로 평생의 친구가 된 투르나이젠(Edward Thurneysen, 1888~1974)이 목회하고 있었다.

바르트가 자신이 배웠던 자유주의신학을 버리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여러 원인을 이야기한다. 그 첫 번째 원인으로 제기되는 것이 ‘93인의 성명서’이다. 이 성명서는 1차 세계대전 초기였던 1914년 10월 독일 유수의 과학자, 예술가, 철학자, 작가들이 독일제국의 군사행동에 명백히 찬성한다는 뜻을 밝힌 문서인데 이 성명서에는 바르트가 존경하는 아돌프 하르낙이나 빌헬름 헤르만 같은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있었다. 이들은 바르트에게 자유주의신학을 가르친 스승들이었다.

하지만 바르트가 자유주의신학과 결정적으로 결별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10년이 넘는 목회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목회 기간 동안 바르트는 설교를 준비하며 전체 성경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고 “성서 안에 있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였다. 그래서 실제로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은 성경본문에 대한 주해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목회 경험, 특별히 설교가 결정적으로 그의 신학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목회 경험이 한 사람의 신학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예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르트와 신정통의 동료였다가 결별한 에밀 브루너(1889~1966) 또한 1916년에서 1924년까지 스위스 산골 옵스탈덴에서 목회자로 섬겼다. 특이한 것은 브루너는 이미 1913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상태였는데 학교에 남지 않고 목회자로 섬기며 교수자격 논문을 완성하였다. 그리고는 1924년 슐라이어마허의 자유주의신학을 비판하는 <신비주의와 말씀>이라는 책을 발간하였고 취리히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러한 예는 비단 바르트와 브루너에서 끝나지 않는다. 라인홀트 니버(K. P. Reinhold Niebuhr, 1892~1971)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윤리학자이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신학자요 조나단 에드워즈 이래 미국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는 1915년에서 1928년까지 자동차 산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미시간의 디트로이트에서 목회하였다. 이 목회 경험은 훗날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1932년)의 저술에 그대로 반영이 되었다. 즉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도덕적일 수 있지만 집단적으로는 필연적으로 비도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학은 학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신학은 교회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목회가 되지 않는 신학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목회하면 목회가 안 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커다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혹여 오늘의 우리의 신학함이 자기만족에 빠져 교회라고 하는 목회현장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목회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목회를 통하여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신학자가 된다. 목회를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며 그 사랑의 대상인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목회를 통하여 우리는 왜 하나님의 말씀이 죄인에게 필요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목회를 통해 우리는 잘못된 신학을 교정받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목회가 바른 길을 가려면 신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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