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사회에서 복음 전하려면 타종교, 타문화 존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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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사회에서 복음 전하려면 타종교, 타문화 존중해야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3.08.0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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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21) 일반계시와 타종교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스탠리 존스(E. Stanley Jones, 1884~1972)라는 인도 선교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간디와 네루 등과 친분이 있었고 인도인들의 문화와 전통을 매우 존중하였다고 한다. 인도인들이 어느 날 스탠리 존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다른 기독교인과 다르다. 우리의 종교와 문화를 매우 존중한다.” 그러자 스탠리 존스는 정색을 하며 “아니다. 나는 구원에 관한 한 매우 배타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어느 성경본문을 근거로 한 설교였는지 몇 년도에 하신 설교인지는 전혀 기억에 없지만 이 이야기는 꽤 큰 영향을 내게 미쳤던 것 같다. 그리고는 늘 이 말씀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수님 이외에는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이 우리에게 없다는 주장은 복음과 구원에 한해서 매우 배타적이다. 문제는 이런 배타적인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우리가 믿는다면 복음과 구원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보다 포용성을 발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1906~1998)은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로 인도 마드라스에서 1936년에서 1974년까지 사역하였다. 하지만 뉴비긴은 인도에서 펼친 선교사역보다 퇴직 후 자신의 고국인 영국에 돌아와서의 후속 사역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뉴비긴이 인도 선교를 위해 떠나던 시절 영국은 기독교 국가였는데 뉴비긴이 자신의 선교사역을 마치고 귀국하였을 때 영국은 종교다원사회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뉴비긴이 쓴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이라는 책의 우리나라 번역본 초판 말미에는 팀 스태포드(Tim Stafford)라는 분의 “레슬리 뉴비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 주신 선교사”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은퇴 후 어느 날 70세가 된 레슬리 뉴비긴은 그가 속한 교파인 연합 개혁 교회의 지방 의회 의장직을 대행하고 있었다. 그때 회의록에는 버밍엄 근처에 있는 윌슨 그린(Wilson Green) 교도소의 담장 맞은 편에 위치한 120년 된 빈민가 교회가 문을 닫는 것에 대한 안건이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뉴비긴은 이 일에 타협할 수 없었다. “만일 교회가 상대적으로 편안한 교외의 환경에 안주하기 위해서 그런 지역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뉴비긴은 말했고 지방 의회는 뉴비긴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그에게 그 교구를 아무런 보수 없이 책임진다는 조건이 주어졌다.

뉴비긴은 윌슨 그린 지역에 많은 아시아계 가정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젊은 인도인 목사인 하킴 싱 라히(Hakkim Singh Rahi)가 자신과 동역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들은 함께 황폐해진 집들을 가가호호 방문하였고, 그러면서 뉴비긴은 영국이 얼마나 기독교적인 것에 멀어져 있는가에 대해서 철저하게 산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거의 언제나 라히와 그를 초대해서 차를 대접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지역의 앵글로계 영국인들은 그들을 면전에서 박대하였다. 그들의 삶은 성경이 아니라 거의 어디서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텔레비전에 의해 형성되어 있었으며, 종교는 개인의 기호의 문제이기에 다른 사람이 간섭해서는 안 되는 사적인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뉴비긴과 라히는 시크교도들과 힌두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열의가 없었고, 어떤 이들은 노골적으로 적대적이었다.

뉴비긴의 신학에 대해서 다소간의 논란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뉴비긴은 종교다원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다원사회에서 열심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은 비난하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종교다원사회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선교학에서 중요시 하는 것이 상황화(Contextualization)다. 복음은 시대와 문화, 장소를 막론하고 불변한 절대성을 가지고 있지만 문화의 다양성과 타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다만 기독교를 제외한 타종교는 하나님의 일반계시에 근거하고 있기에 구원에 관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지는 못한다. 구원의 복음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타종교에는 선한 것이 존재한다. 오일 달라를 앞세운 이슬람에 대해 경계해야 하겠지만 이슬람 혐오는 바른 기독교적 자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혐오가 아니라 사랑과 존중, 만남과 사귐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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