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칼럼] 삶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엔딩노트’
상태바
[시니어칼럼] 삶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엔딩노트’
  • 함현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
  • 승인 2023.07.27 0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과죽음을 생각하다 19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모든 이들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람이 죽어서 자신의 이름을 명예롭게 남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명예롭게 남기를 기대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경기도의 어느 노인대학에서 ‘웰다잉’에 관한 강의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웰다잉’이라는 것이 잘 죽는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잘 죽는다는 것의 전제는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일상에서 행복을 누리고 잘 사시는 것이 ‘웰다잉’의 기본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어르신들께서 최근에 행복했던 일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것을 말씀드렸더니 어느 여자 어르신께서 자기는 그동안 글을 읽고 쓸 줄 몰라서 항상 마음이 불편했는데 얼마 전에 노인대학에서 한글 공부를 해서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어서 노인대학에 다니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남편 기일에 생전 처음으로 남편에게 편지를 써서 읽어주고 편지를 태워 하늘나라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어르신은 지금 정말로 행복해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다른 어르신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가족들에게 편지도 쓰시고, 일기도 쓰시고, 시도 쓰신다고 하시는 행복하다는 말씀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시에 들었던 생각이 호사유피 인사유명입니다.

물론 인사유명의 이름을 명예롭게 남기는 일은 아니지만 무언가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는 것,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노인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듣다 보면 빠져들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운 격변의 시대를 살아오신 이야기들은 어르신들의 말씀대로 열두 권을 써도 모자란다는 이야기에 공감하게 됩니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나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쓰시는 유명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 우리 삶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유언이나 유서는 사전적으로는 말이나 글의 차이 외에는 같은 의미이긴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유서는 자살의 경우와 많이 연관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서는 조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들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일부 자산가들 외에는 유언의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유언은 남아있는 가족들을 비롯해 주위의 분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마지막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엔딩을 준비하는 엔딩노트를 작성하시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의 엔딩노트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투병일지가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소소한 삶의 흔적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비워내는 의미도 될 것 같습니다.

유언(장)의 내용은 먼저 가족과 주위의 친지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재산을 많이 남겨 놓으시는 경우 남겨지는 재산으로 인하여 가족(상속인)들이 다투지 않고 화합을 이루어 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청준 소설가의 축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유언은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내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사랑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다음 글에는 유언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