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45주년, 나의 사랑, 나의 백석] “내 영혼과 가정을 살린 은혜의 교단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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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45주년, 나의 사랑, 나의 백석] “내 영혼과 가정을 살린 은혜의 교단 ‘백석’”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07.19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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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제26대 총회장 조광동 목사 / 예수로교회 원로

45년 간 외형뿐 아니라 영적 내실도 탄탄해져
사랑과 화평으로 신앙 인격 이루는 백석 되길


“오늘날 한국교회는 각종 분쟁과 다툼으로 사회 법정까지 서며 몸살을 앓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단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으로 존중하는 교단입니다. 저는 백석총회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화목의 공동체라 너무 좋습니다.”

백석총회 제26대 총회장이자 사랑운동을 펼치고 있는 조광동 목사는 백석을 사랑으로 화목한 공동체라고 힘주어 말했다. 45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대한민국 3대 교단으로 성장하고 이 과정에서 연합의 마중물 역할을 감당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능했다는 것. 조 목사는 “우리 백석총회는 그동안 몸집만 키운 것이 아니라 영적인 내실도 탄탄히 다져왔고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며 “특별히 설립자 장종현 목사님을 통해 교단은 물론 백석학원과 기독교연합신문사까지 발전시켜주셨고 수많은 선교사, 목회자, 영적 지도자들이 배출되는 영광을 안았다”고 말했다. 

제26대 총회장 조광동 목사가 임기를 마치고 27대 총회장 고 안용원 목사에게 총회기를 전달하고 있다.
제26대 총회장 조광동 목사가 임기를 마치고 27대 총회장 고 안용원 목사에게 총회기를 전달하고 있다.

조광동 목사는 2003년 총회장에 선임된 후 1년 간 총회를 이끌며 다양한 선교적 결실을 맺었다. 이러한 공로로 2010년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 생명의 복음이라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이 총회는 물론이고 나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고백했다. 

193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던 조 목사는 20대 초반 산상집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치유의 은혜를 입었다. 1973년 군소교단 소속으로 예수로교회를 개척한 후 목회를 시작했지만 영적으로 큰 변화를 체험하지 못했다. 신학공부를 10년이나 하고 기도생활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우치지 못했다.

개척시기 부부싸움도 많았고 교인들을 사랑으로 품지도 못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인데 정작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왜 나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할까’라는 고민은 그를 사랑의 길로 인도했다. 1982년 ‘새사랑개혁운동세계본부’를 만들어 오직 성경만을 붙잡고 사랑의 은사를 받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던 중 백석대 신대원에서 개혁주의생명신학을 마주하고는 예수님의 사랑만이 신앙과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저는 기독교는 사랑교이고 대한민국을 사랑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사랑으로 개혁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외친 것이죠. 오늘날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우리가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교회의 문제를 지적할 때 “한국교회가 아니라 우리교회의 문제”라고 말한다. 모든 변화와 개혁은 바로 ‘나 자신’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40년 동안 사랑운동을 펼칠 수 있었다. 

총회장으로 봉사하던 2003년과 2004년 총회 안에 분쟁이 없었던 것도 ‘사랑’에 기인한다. 총회와 노회, 교회, 그리고 성도들 사이에 사랑이 넘치는 교단을 만들어 더 나은 발전을 이루고자 했다. 

조 목사는 백석의 45년에서 ‘장종현 설립자’를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총회를 넘어 한국교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장종현 설립자가 땀과 눈물로 쌓아온 기도를 생각하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고 했다. 후배들에게는 지금의 백석을 일군 장종현 목사의 인내와 헌신을 결코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장종현 목사님은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었던 저를 올바로 이끌어주신 은인이십니다. 신학교에 다니던 때 저는 이북 출신이고 군소교단 출신이라는 점에서 괜히 의기소침하여 적응을 잘 하지 못했고 존재감도 없었습니다. 이런 저를 장종현 목사님께서 세심히 챙겨주시고 늘 많은 학생들 앞에서 저를 인사시키며 칭찬하고 높여주셨습니다. 이런 배려는 제게 큰 용기와 자신감이 되었습니다.”

조광동 목사의 두 아들과 조카들 모두 백석대 신대원을 졸업한 후 목회의 길을 걷고 있다. 조카들은 자신과 같이 은퇴 목사가 되었지만 두 아들은 여전히 현역으로 목회를 하고 있다. 그는 “백석이 나를 살린 은혜의 교단이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가정에서 백석을 통하여 주의 종들이 탄생하는 기적을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목회 일선에서 물러나 사랑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조광동 목사. 그는 백석총회와 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인생을 돌아보니 자신에게 ‘백석’이 가장 큰 자랑으로 남아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도 크다. 총회와 교회에 더 열심히 충성하지 못한 것은 후회와 동시에 지금도 회개하는 부분이다. 

총회 설립 45주년을 넘어 100년의 미래로 향하는 백석. 조광동 목사는 사랑과 화평의 총회로 날마다 발전해 나가길 당부했다. 

“기독교가 비판을 받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 사랑으로 화목한 공동체를 가꿔온 백석총회가 45주년을 기점으로 힘차게 도약하기를 기대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는 신앙의 인격을 갖추고 서로 존중하며 부족함을 채우는 백석총회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길 바랍니다.” 

* 이 글은 백석총회 설립 45주년 기념문집 <이기는 자에게 주신 이름, 백석>에 실린 조광동 목사 글을 인터뷰 형식으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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