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기대치 못한 삶
상태바
[한주를 열며] 기대치 못한 삶
  •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 승인 2023.06.13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성돈 교수
조성돈 교수

전에 친척 어르신 미수잔치에 간 일이 있다. 88세의 나이를 맞이한 어르신이 하신 말씀 중에 가장 인상에 남았던 말은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이다. 88년을 산 어르신의 삶의 소회보다는 이렇게 오래 살게 된 것에 대한 ‘당황’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 말이 상징하는 의미가 상당히 크다고 본다. 오늘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80세, 90세를 어렵지 않게 산다. 요즘 장례식장에 가서 70대에 누가 돌아가셨다면 젊어서 가셨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80세를 넘겨야 그래도 수긍이 되고, 90세는 넘어야 장수하셨다는 덕담이 오간다. 이렇게 수명이 늘어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다.
요즘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삶을 그렇게 계획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이전 어르신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60세가 되기 전에 은퇴하여, 자식의 도움으로 짧게는 10년, 길게는 10여 년 살다가 가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60세가 넘도록 일을 하고 은퇴했고, 이제 28년을 더 살았는데, 아직도 더 오래 살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인생 설계는 70년이었는데, 아직도 3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즉 준비되지 않은 30년의 세월이 남은 것이다.

얼마전 고독사에 관련된 연구를 하면서 일본에서 발간되고 한국에서 번역된 ‘남자의 고독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재밌게 본 부분이 있다. 80세, 90세가 되어도 사람들이 노후 걱정을 하고 산단다. 처음 이 대목을 볼 때는 웃음이 나왔다. 90세 되신 어르신이 노후를 걱정한다는 것이 농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다. 요즘 100세를 산다고 하고, 그보다 더 넘어서 사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니 90세가 되어도 나머지 10년의 삶을 걱정해야 한다. 그러니 노후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고독사가 중요한 아젠다이다. 특히 50대 남자들의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정부와 지자체가 숨 가쁘다. 50대 남자들의 고독사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실직이나 파산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다가, 가족관계가 나빠지고, 이혼하고, 1인 빈곤가구로 전락하고, 식사를 소홀히 하고, 대신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마침내 고독사하는 것이다. ‘남자의 고독사’라는 책에 이러한 고독사의 모양을 ‘소극적 자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남자들의 이러한 남루한 죽음은 삶의 자포자기에서 나온다. 30년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일구었고, 집도 마련했다. 그런데 경제적 끈이 끊어지고, 무너지게 되니 모든 관계가 무너진다. 먼저 가족이 깨어지고, 그 동안 가졌던 관계들이 망가진다. 결국 사람과 가족을 피해 혼자 살게 되는데, 대책이 없다. 이제 50대인데 이러한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앞으로 50년을 이렇게 살게 될지 모른다. 결국 자포자기가 일어나고 삶을 포기하게 된다.

현재 한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동을 겪고 있다. 특히 인구문제에 있어서는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수명은 늘어나고,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베이부머 세대가 은퇴하고, 1인가구가 늘어나고, 아이들의 출생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정부의 예측에서 맞아가는 것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에게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만 앞설 뿐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가 할 일이 있다.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의 가치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욕심에 터된 이 사회의 가치에 반해서 더불어 사는 사랑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다. 이것이 교회가 할 일이고, 이 시대가 살 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