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배하지 않았던 이곳에서 하나님만 붙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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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예배하지 않았던 이곳에서 하나님만 붙들고”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3.02.08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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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사명선언문]
행복한은진교회 심상진 목사 / 울진군기독교연합회 총무
심상진 목사는 57세 나이에 울진군 매화면 갈면리에 행복한은진교회를 개척했다. 심 목사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농촌교회엔 희망이 있고 비전이 있다고 말한다.
심상진 목사는 57세 나이에 울진군 매화면 갈면리에 행복한은진교회를 개척했다. 심 목사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농촌교회엔 희망이 있고 비전이 있다고 말한다.

포스코(POSCO)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퇴직 후 선교사의 꿈을 품었다. 직장인이었던 심상진 목사가 예수님을 만난 곳은 20대 후반 대학생선교단체 네비게이토선교회. 선교회 안에서 아내 한경순 사모를 만났고 이후 23년 동안 리더로 섬기며 직장생활을 겸했다. 부부는 해외 선교를 나가기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끝내 농촌 목회자로 부르셨다. 

57세 나이, 다른 사람들은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심 목사는 교회가 세워진 적 없는 농촌 마을로 향해 교회를 세웠다. 마을 인구가 현재도 250명이나 되는 곳에 그동안 왜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던 것일까. 하나님께서 심 목사 부부를 준비시킨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갈매리에 교회가 세워진 이유는?
울진군 매화면은 심상진 목사가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자란 곳이다. 매화리에서 자란 그에게 이웃마을 갈면리는 익숙한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교인 한 사람도 없는 그곳에 교회를 개척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셨다. 

“한때는 주민이 1,900명이 넘던 마을인데 교회가 없었다는 게 이상하죠. 대한민국에서 유일하지 않을까요? 개척하고는 하나님 앞에서 울기도 했지요. 부지런히 전도하고 주민들과 같이 살았습니다. 저도 300평 밭농사를 지으며 농사일을 돕자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심상진 목사는 마을에서 아주 젊은 층이다. 모내기철, 밭농사철이면 몸살이 날 정도로 어르신들의 일을 도왔다. 300평 밭에는 사흘 동안 고추 1만 포기를 심기도 했다. 모판 3천 개를 논에 깔 때는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대기업 직장생활을 했던 그에겐 익숙지 않은 농사일이었다. 

피곤하지만 저녁이면 부부는 어르신들 집에 맛있는 것을 들고 찾아가 2~3시간씩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대화하고 손잡고 기도하며 울어주었다. 그저 인사하고 나오기 직전 5분 동안 예수님에 대해 설명할 뿐이었다. 

장날이면 찐빵, 만두를 사서 마을회관에서 나눠 먹었다. 목회라기보다 선교에 초점을 두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사역했고, 마을주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한때 이단들이 정장 차림으로 마을을 돌아다닐 때는 단 한명도 꿈쩍 않던 주민들이 마음을 내어주었다. 심상진 목사는 2016년 개척 후 6년 동안 45명에게 세례를 주었고, 22명이 교회에 등록하는 열매를 맺었다. 목회 자립도 이루었다. 

행복한은진교회와 심상진 목사를 만나 예수님을 접한 주민들이 마침내 세례를 받고 믿음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있다. 

이토록 주민이 많은 마을에 교회가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마을은 한 문중의 집성촌으로 유교적 문화 때문에 교회가 세워지지 못하도록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막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인근 목회자가 자전거를 타고 와 몇 가정과 예배를 드린 적도 있지만, 끝내 교회 설립으로 연결되진 못했다. 

“기도의 씨앗이 심겼던 겁니다. 도회지로 나가 예수를 믿었던 주민 자녀들이 고향에 꼭 교회가 세워지도록 기도했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김정욱 선교사도 이 마을 출신입니다. 처가를 오셨던 목사님은 교회가 세워질 땅 번지까지 정하고 기도하셨다는 겁니다. 그곳에, 그 기도 위에 우리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 세우며 드린 3가지 기도
심상진 목사는 그간 목회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채우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 건물과 사택을 건축했기 때문에 재정 여력도 크지 않았다. 목회와 삶을 위해 기본적인 생활비가 필요하지만, 한번도 하나님께선 걱정하지 않게 하셨다. 적자난 적도 없었다. 기도의 응답이었다.

심상진 목사와 한경순 사모는 개척하면서 세 가지 기도를 드렸다. 
첫째는 도시에서 살다 온 부부가 현실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둘째는 다른 영혼들도 구원받고 행복할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의 능력이 있는 교회로 자리하도록, 셋째는 부족한 시골 환경 가운데서도 풍성하게 섬기는 선교를 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결과적으로 모두 응답되었고, 지금도 이루어가고 계시는 하나님이다.

같은 연령대들은 노후 준비도 부족할 때, 부부는 농촌에서 얻을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쌀은 마을 주민들이 나누어주기 때문에, 목회 기간 단 한 번도 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교인들에게 헌금에 대해 설교하거나 헌금명단을 주보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아슬아슬하게 공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충분하게 나눌 수 있도록 도우셨고, 그렇게 마을 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목회의 길이 쉽고 편하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지간한 부식은 자급자족해야 한다. 한경순 사모는 매 주일 교인들과 나눌 식사를 홀로 준비하고 있다. 피곤하고 쉽진 않지만 풍성하게 나누고픈 마음이 앞서기 일쑤라 어쩔 수 없다. 

“도시에 있으면 한창 잘나갈 50대 중반인데 흔쾌히 농촌목회를 해주어 감사하죠. 농촌은 목사보다 사모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아내는 식사도 준비하고 반주와 피아노 교육도 하고 있어요. 불평 없이 섬겨주어 참 고맙습니다.”

 

언덕 위 예쁘게 지어진 행복한은진교회는 새로운 꿈과 비전을 꾸는 터전이 되고 있다. 

“농촌인데 교인이 늘고 있어요”
심상진 목사는 뒤늦게 목회의 길을 가는 만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은 울진군기독교연합회 총무로 섬겼고, 올해 울진 산불피해 때는 전국 교회에서 보내오는 나눔과 섬김을 조율하며, 지역사회와 주민을 위해 헌신했다. 

특별히 심 목사는 ‘농촌교회 미래가 어둡다’는 전망을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다. 마을주민이 감소하면서 교인 수가 줄기 때문에 농촌 목회자들이 낙담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심 목사는 여전히 농촌에는 영혼들이 있고, 마을을 살리는 목회와 선교를 준비하고 도전하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는 목회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45명이 세례를 받았으니 복음을 들어야 할 마을 분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100여명 주민이 사는 옆 마을 길곡리에 2030년까지 교회를 개척하는 ‘비전2030’을 저는 꿈꾸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열릴 때 교회를 개척할 겁니다. 수년 내에 선교사님들이 쉴 수 있는 숙소와 카페형 식당도 짓고 싶습니다.”

심 목사에 따르면 근래 울진군에는 귀농 귀촌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행복한은진교회에도 귀촌한 성도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예수 믿는 자녀들이 있는 어르신들은 더 복음을 잘 받아들인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농촌목회라고 심 목사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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