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있는 지역에 ‘고독사'는 없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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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있는 지역에 ‘고독사'는 없어야죠”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2.12.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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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 17개 교회의 ‘고독사 제로(ZERO) 프로젝트’
민·관 협력 ‘종교협의회’ 사업, 주민돌봄 위해 확대

서울 마포구 노고산 인근에는 독거 어르신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노후화된 거처에서 홀로 사는 분들이 이곳엔 적지 않다. 몇 분만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신촌 번화가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최근 재개발로 입주를 마친 아파트와 주거환경은 천지 차이다. 혼자 사니 세간살이라고 할 것도 변변치 않다. 가파른 언덕에다 좁은 골목길을 힘겹게 오르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그런데 최근 이 지역에서 홀로 사는 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됐다. 특별히 고독사 위험이 높은 주민들을 위해 지역 17개 교회와 대흥동 주민센터가 손을 맞잡았다. ‘대흥동 고독사 제로(ZERO) 프로젝트’다.

대흥동 17개 교회는 주민센터와 함께 ‘대흥동 고독사 제로(ZERO)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복지사각지대 발굴, 교회가 큰 도움”
대흥동은 마포구 관내 16개 동 가운데 인구는 가장 적지만 주거가 열악한 저소득 주민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고지대에 경사가 심하고 노후주택이 밀집해 있다. 반지하와 고시원 같은 주거환경에 사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국가 복지정책과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는 우리나라지만, 문제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주민들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올해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대흥동주민센터 김명식 동장은 “제도가 발전하고 복지담당자들이 발로 뛰지만, 여전히 찾기 어려운 분들이 분명 존재한다. 도움이 필요한데도 숨어버리는 분도 있다”며 “그런데 이분들을 위해 목사님들이 나서 주셔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명식 동장이 언급한 목사님들은 대흥동교동협의회(회장:장헌일 목사) 소속 17개 교회 목회자들이다. 평소에도 주민센터와 잘 연계돼 협력사업을 전개해온 교동협의회는 얼마 전 ‘대흥동 고독사 제로(ZERO)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교동협의회장 장헌일 목사가 시무하는 신생명나무교회와 대흥동주민센터, 대흥동지역사회보장협의회가 함께 서울시 공모 ‘00동종교협의회’ 사업에 최종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됐다. ‘종교협의회’는 지난 9월 서울시가 복지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마련한 정책이다. 지역사회와 밀접한 종교기관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준비된 기획이다.

대흥동종교협의회는 교동협의회 소속 17개 교회와 ‘고독사 제로(ZERO)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실제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장헌일 목사는 “교회들은 이미 독거 어르신들을 돌보며 고독사 예방을 위해 활동을 해왔다. 지역 특성을 잘 이해하고 교회 주변 주민들을 잘 알기 때문에 앞으로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며 “행정과 종교가 협력하는 긍정적 사업 모델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존 교회 사역, 프로젝트에 기여
‘대흥동 고독사 제로(ZERO) 프로젝트’가 전개되면서, 목회자와 주민센터 복지담당자, 통장은 함께 시간이 날 때마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같이 방문하고 있다. 공무원만 찾아오면 서둘러 문을 닫으려고만 하던 주민들도 안면이 있는 목회자가 찾아가면 더 오랫동안 대화할 수 있다. 공무원들은 소통하면서 현재 상황을 더 잘 파악하게 된다.

대흥동 복지 책임을 맡고 있는 김희영 행정지원팀장은 “스스로 주민센터를 찾아오는 분들은 지원방법을 협의하고 상담을 해드릴 수 있다. 하지만 지원을 거부하거나 행정적으로 기준이 안 되는 분들은 난감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목사님들이 도와주시면 취약계층 어르신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며 “목사님들과 현장을 갈 때마다 소통이 더 원활해지기 때문에 업무 성과도 커진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위해 교회들과 주민센터는 지난 10월부터 본격적인 캠페인에도 돌입했다. 불과 석달 동안 650여명의 교인이 캠페인 참여해 긴급 지원이 필요한 주민이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홍보 활동을 전개했다. 

서울시가 지원한 종교협의회 예산뿐 아니라 자체 재정을 마련해 플래카드를 지역에 내걸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누룽지와 파스 같은 물품도 준비해 방문할 때마다 전해드리고 있다. 
우리교회 김연태 목사는 “교회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활동이 고독사 예방을 위한 프로젝트와 효과적으로 맞물린 것 같다. 독거노인을 위해 해온 사업들이 교회마다 있기 때문에 교인들에게도 동참을 적극 권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교회들은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사역을 꾸준히 펼쳐왔다. 밑반찬 봉사, 무료식당 운영, 뷰티서비스 실시, 치매 예방프로젝트를 위한 노인대학 등 다양한 사역이 있다. 교회는 어르신들과 소통의 고리가 잘 마련돼 있다. 

목회자들이 독거 어르신을 찾아가 대화를 나눈 후 기도해주고 있다. 

“먹을 것 없어 가장 힘들어요”
고독사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대흥동에는 예방을 위한 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주민센터와 교회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에 맞는 제도를 만들기로 한 것. 지난 12일에도 ‘대흥동 고독사 제로(ZERO) 프로젝트’ 추진회의를 열고, 비상연락망 정비, 긴급상황 대비 소통체계 마련, 교회 내 관련 사역 위원회 설치 등에 대해 검토했다. 

최근에는 지역 내 거점을 만드는 활동도 시작했다. 거점을 중심으로 독거 어르신의 활동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50년 동안 대흥동에서 자리를 지켜온 명성이발소가 출발이다. 김정수 대표는 평소 이발하던 손님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주민센터와 종교협의회에 연락하게 된다.

목회자들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교인들이 동참하는 체계도 중요하다. 평소 집 근처 독거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아예 담당을 맡기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지금까진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 최근 한 목회자는 수입이 끊겨 국민연금 30만원으로 살던 노부부 중 아내가 갑작스럽게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를 확인했다. 남편은 장애까지 있는 상황. 이 부부는 우선 쌀과 반찬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얼마 전에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 기초생활수급자 어르신이 두 차례 자살을 시도한 정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간경화까지 있는 해당 주민이 지금 가장 힘들다고 한 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교동협의회 총무 마지원 목사(새롬교회)는 “홀로 사는 분들의 처지는 현장에 나가봐야 알 수 있다. 앞으로 성도 한분 한분이 모니터 요원으로 함께한다면 고독사 같은 불행한 일은 반드시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역 교회들과 행정 관청이 협력하고 서로 보완하고 있는 ‘대흥동 고독사 제로(ZERO) 프로젝트’가 향후 다른 지역으로 확산 될 것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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