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통해 ‘라바룸’ 본 콘스탄티누스, 313년 기독교 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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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통해 ‘라바룸’ 본 콘스탄티누스, 313년 기독교 공인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2.12.0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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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카타콤과 기독교 신앙의 상징(10)

카타콤에서 발견된 또 한 가지 상징적 이미지가 그리스 문자 키(Χ)와 로(Ρ)를 겹쳐놓은 키-로 문양(☧)인데, 이를 라바룸(labarum)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의 첫 두 글자 키(Χ)와 로(Ρ)를 합쳐 만든 것인데,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5년 이래로 로마제국은 네 사람의 권력자가 제국을 분할 통치했는데, 서방의 경우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가 황제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그런데 결전인 밀비안 전투를 앞둔 312년 10월 27일 저녁 콘스탄티누스는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역사가인 에우세비오스(Eusebios)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는 ‘이 표로 승리하리라’(In hoc signo vinses, In this sign, you will conquer) 글씨와 함께 십자가가 그려진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북아프리카에 거주하던 역사가 루키우스 락탄티우스는 콘스탄티누스 1세에게 휘하의 모든 병사들의 방패에 (Χ)와 로(Ρ)를 표시하여 두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십자가 기를 만들고 병사들의 방패에 키와 로를 그리게 하여 임전하였고 10월 28일 콘스탄티누스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패전한 막센티우스는 티베르 강을 건너 도망가다가 밀비안 다리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본래 이교(異敎)인 미트라스(Mithras) 숭배자였다. 그러나 이 일로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313년에는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공인(公認)이란 이름 그대로 불법의 종교였던 기독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라바룸 상징이 콘스탄티누스 통치기 은화(silver coin)에 처음 등장한 것은 317년이었다. 이런 연유로 라바룸이 카타콤의 프레스코화에도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 라바룸은 십자가와 함께 기독교 신앙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이 라바룸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한 가지 흔적이 잉글랜드 남부 도싯(Dorset)주의 힌톤 세인트메리라는 곳에서 발견된 모자이크이다. 로마가 지배하던 잉글랜드와 웨일즈 그리고 남부 스코틀랜드는 로만 브리튼이라고 불리는데, 로마 교회의 영향이 이곳에까지 확산된 것이다. 힌톤 세인트메리에서 1963년 발굴된 모자이크를 ‘힌톤 세인트메리 모자이크’(Hinton St. Mary Mosaic)라고 부르는데, 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가로가 5.2m, 세로가 4.6m인데 둥근 모양의 모자이크 중앙에는 그리스도의 상이 그려져 있고 그 뒤에 키와 로가 합쳐진 라바룸이 그려져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 모자이크가 새겨진 건물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교회당이거나 큰 저택의 식당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자이크에 그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현존 하는 가장 오래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미지라는 점이다. 이 예수님이 라바룸의 중심에 있어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힌톤 세인트메리 모자이크’는 현재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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