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째주 하늘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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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째주 하늘문을 여는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2.11.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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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너희가 주라 / 마태복음 14:13~21 / 찬송: 316장

사람들은 목소리가 다릅니다. 그래서 목소리를 조사하여 보았더니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목소리 즉 부드럽고, 뚜렷하고, 신뢰할만한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목소리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는 어떠했을까요? 상당히 좋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복음을 전하신 것을 보면 성대가 아주 좋았을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고, 은혜와 진리가 있기에 많은 사람이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 의식주도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먹을 것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저녁이 되자 저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일이 깜깜하였습니다. 이에 최선책으로 자기들 스스로 각 자 알아서 하라고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가 주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너희로 이 기적의 역사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명을 주시는 것이며,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이며, 더욱 책임감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나를 통해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시길 원하심에 반응하며 주님이 하시는 이 기적의 역사에 쓰임 받는 주인공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나를 통해 주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게 하옵소서!

 

화요일 / 절대 해석자이신 하나님 / 창세기 1:1~8
찬송: 425장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두 사람이 왕에게 죄를 지어 요셉이 있는 감옥에 갇혀 그 내용이 다른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두 관원장은 그 꿈을 해석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근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 관원장의 근심에서 ‘모든 인간들이 겪고 있는 불안감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호흡이 코끝에 달린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당이나 점술가에게 가서 점을 치는 어리석은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 관원장에게 꿈을 꾸게 하신 분이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이셨듯이, 요셉의 고백처럼 그 꿈의 해석 또한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말입니다.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절대적으로 주관하시는 분도, 인간 세상의 역사도 자신의 뜻과 섭리에 따라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진정한 내 삶을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내 삶의 절대 해석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의지하며 그분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수요일 / 바울의 제자 디모데 / 사도행전 16:1~5
찬송: 430장

디모데의 신앙의 강력한 영향을 준 자는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에게는 신앙의 멘토이자 교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는 제자 훈련의 시작이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디모데는 성도들에게 칭찬받는 즉,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신실한 신앙을 소유한 모태 신앙이었으며 동시에 칭찬받는 인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제자로서의 자질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사람을 보내기 원했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하여 먼저 복음을 위해 헌신할 자를 찾았습니다. 자원하여 헌신한다는 것은 제자의 가장 기본 자세 중 하나입니다. 선교지 방문 일정을 위해 동행하며 답사하는 것은 경제적 부담과 현실적 부담을 줍니다. 그럼에도 디모데는 바울의 뜻을 따라 마게도냐로 떠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제자로서의 자질 중 하나는 신뢰 관계를 잘 유지하는것입니다. 바울의 사역 현장에 언제나 함께한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디모데를 신뢰한 바울은 그를 대신하여 가르치게 할 정도로 그와 신뢰관계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구경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함께 할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 동역할 수 있는 믿을만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앞에 합당한 제자 되어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목요일 / 감옥에 가둘 수 없는 사람 / 사도행전 5:12~42 / 찬송: 184장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세상입니다. 내가 자유 한 것 같지만 영적으로 자유하지 못하며, 세상 근심과 걱정에 눌리고 매여서 영적으로 노예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은 이 세상에 누구도 그를 감옥에 가둘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깊은 옥에 가둘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옥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가 어떤 사람인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래 그는 학문도 없고, 권력도 없으며, 재력도 없는, 그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베드로는 세상이 감당 못할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떤 권력도, 세상의 힘도, 잘난 사람도, 그를 옥에 가두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된 것은 오순절 다락에서 성령을 체험한 직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되므로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아침에 이런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성도는 성령의 힘과 도우심으로  죽을 것 같은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시고 동서사방으로 닫힌 옥문을 열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며 형통하게 하십니다. 우리도 이런 능력으로 무장하여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내게 성령충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금요일 /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삶 / 마태복음 24:36~44 / 찬송: 180장

대림절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개인적인 종말이든지 아니면 전 우주적인 종말이든지 반드시 종말 앞에 설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지금 이 시간도 우리는 계속해서 종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의 말씀은 주님이 재림의 때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는 물론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알 수 없다고 하십니다. 오로지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우리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날을 준비하며 사는 삶이란 한마디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주님과 신실한 관계를 맺으며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되 깨어서 시대를 분별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경건한 삶으로 채워가야 합니다.

무화과나무의 새 잎이 나면 그것을 보고 곧 열매를 수확하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시대를 분별하고, 불현듯 도둑이 찾아 올 것을 예비하는 것처럼 종말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비록 오늘 우리 삶의 현실이 암담하고, 비참하고 어둡다고 할지라도 내일의 희망을 담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믿음을 잘 지키는 가정이 돼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재림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고 미혹하는 이들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토요일 / 깨어 있는 신앙인이 되자 / 창세기 5:22 / 찬송: 303장

오늘 본문에 므두셀라는 ‘메두셀라흐’라는 히브리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배우고 나의 영육에 바로 익혀 가르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는다”라는 상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메두셀라흐’라는 이름 속에는 ‘보낸다’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므두셀라가 사망한 그 해에 노아 홍수 심판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므두셀라는 969세를 이 땅에서 살다가 죽었는데 사망한 그 해, 노아가 600세에 하나님께서 천하를 홍수라는 거대한 심판을 통하여 인류의 종말이 왔습니다. 이처럼 무드셀라의 이름에서 계시되듯이 우주의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나의 공로가 아닌 전폭적인 아가페 사랑으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에녹은 자신의 아들 므두셀라를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계시를 알았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홍수 심판 때에 그들이 죽었듯이 마지막 날에 홀연히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우리도 영적으로 날마다 깨어 있어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하늘의 은혜를 받아 거룩한 성도가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심판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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