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고 기다리고 만나주면 아이들은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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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주고 기다리고 만나주면 아이들은 자랍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2.11.23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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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 한국교회, 미래를 품다 (35) 보호 중도종료 청소년 돕는 윤용범 장로

법무부 소년보호직 공무원 출신, 37년간 청소년들과 ‘동고동락’
아난티그룹 이중명 회장과 함께 3년 전 ‘청소년행복재단’ 꾸려
촉법소년 연령 하향 관련 논란 일자 ‘성경적’ 입장 성명서 발표
윤용범 장로는 평생 청소년들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다. 윤 장로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들만 해도 700명이 넘는다. 그의 사무실에는 ‘아들 딸’들로부터 받은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윤용범 장로는 평생 청소년들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다. 윤 장로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들만 해도 700명이 넘는다. 그의 사무실에는 ‘아들 딸’들로부터 받은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지난 여름 법무부 주례간담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현실화하는 과제를 속도감 있게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관련 주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최근 몇 년간 청소년 범죄가 흉포화한 까닭에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찬성 여론이 우세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대표회장:소강석 목사, 이하 기공협)가 이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기공협은 당시 성명에서 “기독교인에게 ‘사명’이란 사람을 살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며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일인지 깊은 묵상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특히 “소년원에 입원하는 많은 청소년이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 정신건강문제를 호소하고 있다”며 “연령의 하향으로 12~13세 소년을 형사처벌로 소년교도소를 보내는 충격요법을 통해 재범을 줄여 보겠다는 대중영합주의에 접근하는 해결방안의 제시는 참으로 안타깝다”는 지적은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소년범들의 현실을 담고 있어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초안을 쓴 사람은 법무부 부이사관을 지낸 윤용범 장로(경기중앙교회)다. 1985년 9급 소년보호직으로 공직을 시작한 뒤 30년 넘도록 소년원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아버지’ 역할을 자처했던 윤 장로인지라, 그저 촉법소년 연령만 낮춘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지난 2019년 법무부를 퇴직한 뒤 이중명 집사(원천교회 / 아난티그룹 회장)와 청소년행복재단(이사장:이중명)을 꾸려 사무총장으로 실질적인 살림을 맡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그리고 청소년행복재단이 외치는 ‘청소년, 믿기만 하자!’는 구호가 어떤 의미인지 들어봤다.

 

보호 중도종료 청소년

기존 아동복지법 아래에서는 아동복지시설에 사는 만 18세가 된 아동들은 ‘보호 종료’가 되어 퇴소해야 했다. 이렇게 퇴소하는 이들만 매년 2,500명 가량. 다행히 지난해 보호 종료 아동 지원강화 방안이 마련되어 보호 종료 나이가 24세로 연장됐다. 자립 정착금도 1,500만원으로 증액됐다. 

그런데 보호 종료 이전에 가출이나 비행 등의 이유로 소년 보호처분을 받은 아이들의 경우 자신들이 있던 보육시설로 복귀하지 못한다. 자연히 사회에 표류하게 된다. 이들을 ‘보호 중도종료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윤용범 장로와 청소년행복재단은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벌이지만 특히 ‘보호 중도종료 청소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보호 중도종료 청소년의 경우 보호 종료 아동이 받을 수 있는 자립수당과 자립 정착금 등의 국가 혜택이 박탈된다. 이로 인해 이들의 사회 적응은 더욱 어려워진다. 윤 장로는 “국가의 보호와 관리를 받지 못한 이들은 결국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된다”며 “이런 불완전한 제도로 인해 미래에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청소년행복재단은 아이들을 위한 가족의 울타리를 제공한다. ‘가족형 삼각멘토링 결연활동’을 통해 고위기 청소년 한 명이 중심이 된 ‘카톡방’ 안에 멘토와 후원자, 사무총장 등 몇 명이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 각각 아버지와 엄마, 이모, 삼촌 등의 역할을 맡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삶을 응원하는 ‘가족형 돌봄 시스템’이다. 현재 13개 카톡방이 운영되고 있으며, 35명의 전문 멘토단이 참여하고 있다. 

보호 중도종료 청소년을 위한 긴급 생활지원과 법률지원, 의료지원 등 든든한 바람막이 역할도 하고 있다. 이 밖에 배가 고픈 아이들을 위해 도시락 쿠폰을 지원하고 31개의 위기 청소년을 위한 ‘행복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 윤 장로를 찾은 한 ‘딸’과 함께. 방황했던 청소년기를 지나 이제는 어엿한 부모가 되었다.
얼마 전 윤 장로를 찾은 한 ‘딸’과 함께. 방황했던 청소년기를 지나 이제는 어엿한 부모가 되었다.

 

괴물이 아닙니다

재단에서는 현재 18살부터 30살까지의 보호 중도종료 아동들을 돌보고 있다. 윤 장로는 이 아이들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당부했다. 

“이 아이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기 나이에서 6살 정도를 빼고 바라보려고 합니다. 재단이 내세우는 ‘청소년, 믿기만 하자’는 구호에도 그런 마음을 담았습니다.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만’나주면 ‘하’루하루 ‘자’란다는 뜻이죠. 

윤 장로도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가졌던 건 아니다. 그는 소년 보호직으로 근무한 처음 석 달의 자신을 회상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소년원 아이들을 보며 희망이 없다고 여겼지만, 점차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 처한 환경 등을 알아가면서 ‘나도 저런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더 큰 죄를 지었을 수 있다’고 깨달았다는 것. 

“한 아이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초등학교 4학년인데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떨어져 사망하셨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가야죠. 아이는 할머니와 살면서 엄마가 돌아오기만 기다리죠. 애착이 상실된 겁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비슷한 환경의 친구나 형이 불러서 담배를 권하고 술도 마십니다. 술 한잔 마시면 힘든 일을 다 잊어버리니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술 살 돈이 있나요? 지나가는 아줌마 핸드백에 손을 댑니다. 그렇게 촉법소년이 되는 거죠.”

더 큰 문제는 아이들 스스로가 ‘나는 범죄자’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낙인 효과’다. 

“한 여자아이가 있어요. 노래를 참 잘 부릅니다. 이제 18살이 됐는데, 그 아이더러 ‘너 가수 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아빠 저는 범죄자잖아요’라고 합니다. 그 아이는 심지어 소년원에 다녀온 것도 아니고 심사원만 다녀왔는데 자신을 범죄자라고 낙인찍는 거죠. 이점이 제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살인을 저질렀거나 악독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격리하는게 맞죠. 그런데 법으로 연령 기준을 낮춰버리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까지 범죄자로 낙인을 찍고 괴물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겁니다.”

 

법무부 재임 시절 역대 대통령들로부터 받은 표창과 훈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윤용범 장로.
법무부 재임 시절 역대 대통령들로부터 받은 표창과 훈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윤용범 장로.

 

청소년 사역은 하나님의 명령

윤 장로의 청소년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어떤 매체는 그를 ‘700명의 아버지’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 장로는 이 모든 일이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라고 했다.

“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수도 없이 많아요. 정확하게 몇 명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700명이라는 숫자는 제가 칠순 잔치를 하면 아들·딸 700명을 불러서 갈비탕 사 먹이고 싶다고 한 데서 나온 것 같아요. 사실은 700명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죠. 34년간 소년원에 근무했고 퇴직 후에도 3년째 청소년들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인터뷰 중에도 윤 장로의 전화가 연신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안부를 묻기도 한다. “00이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에는 다급하게 이곳저곳 전화를 돌린다. 보람만으로 하는 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힘든 일인데 윤 장로는 연신 감사와 기쁨을 이야기했다.

“이런 예화가 생각납니다. 미국의 한 바닷가 마을에 수만 마리의 불가사리 떼가 몰려왔다고 해요. 한 소년이 불가사리들을 바다에 던집니다. 그 모습을 본 어른이 부질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소년은 ‘불가사리 입장에서도 부질없는 일이겠느냐’고 답하죠. 저도 이 소년의 마음으로 이 일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기에 힘이 닿는 때까지 순종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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