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장애인 예수와 어린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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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장애인 예수와 어린 돼지
  • 김종생 목사
  • 승인 2022.11.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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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생 목사 / 소금의집 상임이사

오래전 스위스교회의 루마니아교회를 위한 선교의 노하우를 배워 새로운 북한선교를 모색하기 위하여 루마니아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루마니아 중소도시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다가 예배당 뒷벽에 걸린 유화 한 폭을 발견했다. 장애인 예수를 그려놓은 유화였는데 팔다리가 없을 뿐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장애인 선교를 하는 교회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뜻밖의 그림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담임목사께 물었다. “왜 하필 장애인 예수신가요?” 그러자 담임목사는 “좋은 질문 감사하다”며 “… 우리 주님은 여기 그림처럼 앞을 보지 못합니다. 또한 여기 그림에 표현해 내진 못하지만 말씀을 하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다리가 없어 걷지도 못하고 손이 없어 악수도 포옹도 못하시고 봉사도 못하시는 장애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잠시 숨을 돌리시더니 이어서 “오늘의 우리가 그분의 눈이 되어 아픔과 눈물을 닦아야 하고, 그분의 귀가 되어 약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분의 손이 되어 지치고 힘든 이웃을 다독이며 일으키고, 더러는 응원을 위해 박수도 쳐야 합니다. 그분의 다리가 되어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당신의 심정이 되어 살벌하고 냉랭한 사람들을 찾아 그 따스함과 포근함을 전달해 주시기를 요청하십니다”고 했다.

나는 ‘쿵’ 한 대 얻어맞은 느낌 가운데 엄청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모든 선교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답을 얻게 되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대신 보내셨다’라는 탈무드의 격언처럼 주님은 이 세상 모든 곳에 주님이 있을 수 없어 우리 성도들을 대신 보내신 것이었다. 우리는 주님을 대신해 주님 심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대해야 되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겪는 고초에 대한 연민과 연대를 통한 지지와 지원은 해오면서도 우리 주님이 장애인이라는 등식은 적어도 나의 사전에는 없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두고 누구의 책임인가 공방을 벌이면서도 그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던 바리새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철수, 탈레반의 카불 점령 등으로 위기에 처하면서 우리 정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76가정 394명이 ‘특별기여자’ 명목으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 신봉자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이들을 향한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환대를 바탕으로 우리 기독교계가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도우면 좋은지를 두고 KWMA(한국세계선교협의회) 관계자들과 지혜를 모으는 자리를 가졌다. 그때 아프가니스탄에서 먼저 복음을 접한 한 형제가 우리들에게 완곡하게 요청해 왔다. “개종을 위한 일방적인 전도보다는 그냥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세요 그리고 기다려 주시면 돼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한국교회의 문법이었다면 그는 조금 다른 주문을 해 온 것이다. 이슬람 종교와 문화 속에 살아온 자신들을 조금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방식의 변화를 요구받게 된 것이다. 

새로운 상황 속에 주님을 만나게 되는 이들에게 지금은 내가 경험하고 내가 이해한 주님이 아니라, 양을 보지 못하는 어느 나라에서 어린 양 대신 어린 돼지로 번역하듯이, 그들이 만날 주님을 그들이 이해하는 복음으로 표현해 보여주는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2010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사무총장 김종생 목사.
김종생 목사 / 소금의집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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