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마약옥수수’를 이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 등의 명칭에 마약과 같은 유해 약물에 대한 표현을 사용하거나 광고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마케팅’이 마약에 대한 경계를 허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해외의 경우 마약이라는 표현을 음식이나 일상용어에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중독성이 강함’을 뜻하는 관용어구로 ‘마약’이 큰 거부감 없이 사용돼왔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마약을 찾아보기 힘든 나라여서였다.
‘마약 청정국’은 옛말
하지만 이젠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리나라는 이미 UN이 규정한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마약 청정국으로 인정받으려면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이 20명 이하여야 하는데 한국은 2016년 이 기준을 넘었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21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6년 1만4,214명이 마약류 사범으로 적발됐고 코로나 이후인 2020년에는 1만8,050명으로 늘었다. 입수된 마약류의 양과 종류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난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주은 교수(충남대 중독행동연구소장)는 마약으로 적발된 숫자보다 실제 마약 사용자가 30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했다. 최근 적발자 수를 대입해보면 약 40만명의 인구가 마약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더 심각한 점은 마약에 빠진 이들의 연령대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실에서 개최한 ‘마약류 퇴치 교육 지원에 관한 입법 토론회’에 참석한 김보성 과장(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과)은 “예전 마약류 사범은 주루 30~40대였는데 이제는 20~30대가 많아졌다. 19세 이하 청소년의 마약류 사범은 10년 새 11배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클럽 등에서 다른 사람이 주는 음료를 마셨다가 의도치 않게 마약을 복용하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청소년·청년 세대가 마약을 접하는 이유에는 호기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마약은 한 번이라도 입에 댔다가는 돌이키기 힘든 결과를 가져온다. 의존증과 금단증상으로 인한 일상 파괴는 물론이고 마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에 손을 댈 가능성도 높다. 뇌세포 손상과 편집증, 조울증 등 신체와 정신의 파괴도 수반된다.
교회가 중독 예방 앞장서야
급증하는 마약 중독 사태를 손 놓고 방관할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김보성 과장은 “다크웹과 보안메신저, 암호화폐 등으로 인해 마약에 대한 접근과 거래는 더 은밀하고 쉽게 이뤄지고 있다. 수요가 줄지 않으면 아무리 단속해도 다른 공급자가 그 자리를 채운다. 수요 억제책을 마련하는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극도로 심한 중독과 금단증상을 유발하는 마약이기에 마약에 빠지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이미 마약에 손을 댔다면 치료와 재활이 필요하다. 한국중독전문가협회 김영호 회장은 입법토론회에서 “우리 사회는 마약을 범죄로만 본다. 하지만 마약은 중독이기도 하기에 예방과 치료가 중요하다. 흡연, 도박, 알코올 등 예방 프로그램은 예산과 인력, 인프라가 있지만 마약 분야는 너무 뒤쳐져 있다. 마약중독의 회전문에서 나오려면 교정시설에서 죄값을 치른 후 지역사회에서 ‘환자’로 인식하고 케어하는 사후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교계도 중독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 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홍호수 목사와 조현섭 교수(총신대 중독재활상담학과)가 손을 잡고 시작한 ‘청소년중독예방운동본부’는 중독 예방전문가를 양성하고 중독 예방 커리큘럼 및 교재도 개발하는 등 자라나는 다음세대를 지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2020년엔 ‘중독예방기독교연합’이 출범하기도 했다.
홍호수 목사는 “마약 분야는 마약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청예본은 아직 다른 중독 분야에 집중하고 있지만 마약 중독의 심각성도 인식하면서 언제든 교회와 다음세대의 필요에 응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면서 “교회와 나라의 미래인 다음세대가 마약으로 망가지지 않도록 한국교회가 버팀목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마약은 힘겨운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찾는 경우가 많기에 교회가 마약 중독 예방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의 실험에 의하면, 아무것도 없는 좁은 우리에 갇힌 쥐들은 모르핀이 희석된 물을 선호해 중독되고 결국 일찍 죽은 반면 놀이기구와 친구들이 많은 우리에서 키운 쥐는 약을 탄 물보다 그냥 물을 선호해 오래 살았다. 다음세대가 교회에서 진정한 위로와 평안을 경험한다면 마약으로 빠지는 것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조현섭 교수는 “교회나 수양관을 청소년들이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고 성취를 경험하도록 해주면 중독을 예방할 뿐 아니라 회복시킬 수 있다”면서 “교회 안에서 중독문제를 눈치주고 낙인찍을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중독 문제를 똑바로 인식하고 예방과 회복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