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폴리투스, 성도들의 기도로 평화가 가능하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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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폴리투스, 성도들의 기도로 평화가 가능하다고 생각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2.02.0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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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초기 기독교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해(11)

 

히폴리투스 당시 로마제국의 군 복무가 반드시 전쟁이나 사형 집행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었다. 군인은 도로 정비, 우편배달, 경계 업무, 그리고 다른 형태의 시민적 봉사의 역할도 했다. 따라서 살인을 거부하는 이들도 군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군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장교들은 즉각 군에서 떠나도록 요구되었으나 책임이 낮은 하위 계급의 군인들에게는 조건부로 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 조건이란 피 흘리는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다른 한 가지 조건은 군에서의 서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군 생활의 정기적인 관행으로서 일 년에 적어도 세 차례 시행되었던 군인의 서약은 단순한 복무예식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 서약은 황제에 대한 충성 서약으로서, 진정한 사령관인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기독교인의 신앙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이방신을 숭상하는 황제에 대한 충성은 사실상 종교적인 문제였다. 그것은 제국의 군국주의적 우상숭배 관행의 중심 되는 의식이었다. ‘사도전승’ 제17항을 보면 히폴리투스는 신자가 된 군인의 상황을 잘 헤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는 군 복무 중 신자가 된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만, 사도전승 제19항에서는 세례 후보자나 신자가 된 사람이 군인이 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기독교인의 군 지원 입대를 금지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경멸하거나 혹은 멸시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란 다름 아닌 우상숭배나 피 흘리는 행위, 그리고 군인의 서약을 의미한다.

정리하면 히폴리투스는, 이미 군인이 된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을 경우 살인행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거나 군인의 서약에 가담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군에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자가 된 사람이 살인, 서약, 우상숭배의 가능성이 있는 군에 입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일로 간주하여 금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군 복무에 대한 가르침은 에디오피아,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에서 작성된 교회 규정에서 두 세기 이상 지속되었다. 이런 교회 규정집은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 기초한  문헌이기 때문에 ‘사도전승’의 내용과 동일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사도전승’은 오랫동안 ‘이집트의 교회법’(Constitutiones Ecclesiae Aegypticae)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져 왔다.

히폴리투스는 ‘다니엘서 주석’에서도 군인과 전쟁에 대한 거부, 그리스도인들의 평화적인 기능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느브갓네살 왕의 꿈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다니엘서 4장을 주해할 때, 4장 10절의 ‘나무’ 그늘에 모여든 짐승들(12절)을 군인들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하고, 넷째 짐승을 로마제국으로 해석했다. 그 이유는 로마제국의 호전성이라고 보았다. 또 그는 성도들의 기도로 세계의 평화가 가능하게 된다고 보았다. 

당시의 다른 교회 지도자들 또한 기독교인들의 군 복무 반대에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보이지만, 3세기 신자들이 이를 그대로 준수한 것은 아니었다. 히폴리투스의 가르침과는 달리 신자들이 군인이 되기도 했고, 군 복무 중 살인에 가담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외 규정이 더해졌고,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신자들의 생활 방식은 새로운 정치 환경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스트로우마(Guy Strouma)의 지적처럼 초기 기독교는 신약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롬 5:43~48, 10:34 눅 6:27~33, 12:49~51) 평화 지향적(irenic)이면서도 동시에 전투적(eristic)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인과 이방인, 이교숭배자 모두에게 평화의 복음을 증언하면서도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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