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윤리주의자 히폴리투스는 ‘칼의 권력’ 자체를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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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윤리주의자 히폴리투스는 ‘칼의 권력’ 자체를 반대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2.01.27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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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초기 기독교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해(10)

 

군 복무와 살상을 반대하여 평화주의를 지향한 또 한 사람의 교부가 3세기의 히폴리투스(Hippolytus, c. 170~235)였다. 히폴리투스의 생애에 대하여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나, 초기 교부 이레네우스(Irenaeus)의 제자로서 로마교회의 감독이었고, 또 저명한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 저술을 남겼는데, 『육일 간의 천지창조에 관하여』, 『마르키온에게』, 『아가서에 관하여』, 『에스겔서에 관하여』, 『유월절에 관하여』 등이 있고, 변증 문서인 『노에투스 논박』(Contra Noetum)과 『모든 이단을 배척함』(Refutatio omnium haeresium)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이 『사도전승』 (Traditio apostolica)이라는 글인데, 초기 기독교회의 규정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교회 규정에 관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주후 200년 전후의 로마교회의 상황을 보여 주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에서 특히 그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주의를 옹호했다.

히폴리투스는 윤리적 엄격주의자였다. 그는 세례 받은 신자가 간음, 살인, 배교 등 세 가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지상의 교회는 이를 용서해 줄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죄를 범한 이들은 성찬에 참여할 수 없고 교회의 교제로부터 단절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일로 로마의 감독 칼리스투스(Callistus I)와 대립하기도 했다. 칼리스투스는 간음의 죄를 범했으나 회개한 이를 받아들이고 로마교회의 성찬에 참여하게 하여 히폴리투스의 반발을 불렀다. 그러나 칼리스투스는 교회란 마치 깨끗한 짐승만이 아니라 더러운 짐승도 함께 들어온 노아의 방주와 같으므로 교회는 회개한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 또 로마교회 감독은 인간의 죄를 매고 푸는 권세를 받은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이론으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했다. 이에 대해 히폴리투스는 교회란 모름지기 거룩한 의인들의 공동체여야 하며 교회 안에는 죄인들이 들어올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처럼 엄격한 윤리적 표준을 가르쳤던 히폴리투스는 자신의 『사도전승』에서 특정 직업에 종사하거나 행위를 하는 자는 교회 회원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매춘업자, 매춘부, 마술사, 점성가, 연극배우, 곡예사나 검투사, 그리고 우상 제조업자가 그러한 직업들이었고, 또 기독교인이 우상을 소지하거나 부도덕 한 일을 지속하는 것도 부당한 일로 간주했다. 살인을 대죄(大罪)로 간주하는 그가 검투 경기의 참가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당시의 검투 경기가 인명 살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히폴리투스가 문제시한 세 가지 죄인 간음, 살인, 배교 중에서 살인은 직접적으로 군 복무와도 관련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군복무도 엄격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는 『사도전승』의 3개항에서 이렇게 썼다. “하위 계급의 군인은 사람을 살해해서는 안 된다. 비록 그런 명령을 받는다하더라도 그 명령을 수행해서도 안 되며, 또 그같이 명령해서도 안 된다. 만약 이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교회 회원권을 박탈한다. 칼의 권력을 가진 자나 고위층의 관복인 자줏빛 옷을 입는 위정자가 있다면 그 직을 포기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회원권을 박탈한다. 군인이 되기를 원하는 예비신자나 신자가 있다면 그들의 교회 회원권은 박탈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사도 전승』은 부도덕한 일이나 마술을 행하는 자뿐만이 아니라 우상숭배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력을 반대한다. 히폴리투스는 서커스나 검투 경기도 군 복무 혹은 전쟁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로마인들은 평화의 시기에는 경기장에서 검투 경기라는 살인적인 경기를 통해 군인 정신을 고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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