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와 광적인 타락으로 이어진 오락, 사회 문제로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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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숭배와 광적인 타락으로 이어진 오락, 사회 문제로 비화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1.04.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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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초기 기독교와 오락(5)

앞서 로마시대의 대표적인 두 가지 오락, 곧 검투경기와 연극에 대해 소개했는데, 이런 오락에 대해 초기 기독교는 부정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에는 이런 오락에 대해 2세기 대표적인 라틴교수였던 테르툴리아누스(c. 150~)는 어떻게 생각했는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출신인 테르툴리아누스는 이교가정에서 출생했으나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그의 모든 학식을 통해 신앙을 변호하고 기독교적인 삶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고, 하나님을 위한 논쟁자(contender for God)가 되었다. 그는 이교도들에 대항하여 변증적인 작품만이 아니라 각종 이단에 대항하여 정통 기독교신앙을 변호하였고, 교회가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의 영적 해이나 나태에 대해서도 공격하면서 기독교적인 생활 방식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런 목적에서 씌여진 한권의 책이 ‘드 스펙타큘리스 De Spectaculis’ 라는 책인데, 영어로 On the Spectacles 혹은 The Shows라고 번역되는데 ‘구경꺼리에 관하여’ 혹은 ‘오락적인 쇼에 대하여’ 등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197년에서 202년 어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문서는 테르툴리아누스가 기록한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소책자인데, 서커스(곧 검투경기 circus), 연극(theatre), 혹은 원형경기장(amphitheatre)에 참석하거나 참관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의 문제와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개설한 작품이다.

이 글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인간적인 즐거움의 추구는 하나님에 대한 거역일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모든 검투경기 연극, 마차경기 등에 대한 참관이나 원형경기장 참관을 금지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는 로마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있는 공중오락은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께서 인간에 주신 재능의 오용이라고 본 것이다. 근본적으로 그는 이런 오락이나 구경거리는 고대 로마의 종교의식인 리베랄리아(the Liberalia)나 콘수알리아(the Consualia), 에퀴이리아(the Equiria), 혹은 바카날리아(the Bacchanalia)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았다. 리베랄리아는 3월 17일 지키는 로마의 고대 포도주 축제인데, 이것은 포도의 신 리버(Liber)와 그의 아내 리베라(Libera) 신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는 축제였다. 희생제물을 바치고 행진을 하고 노래 부르고 가면을 쓰는 그런 의식이 있었다. 로마 공화정 말기와 제정 초기의 역사가 리비우스(BC 59~17AD)가 이 축제가 ‘광기와 타락의 난동장’이라고 성토했던 것을 보면 ‘변질’된 축제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종교의식은 그리스의 디오니수스(Dionysus) 축제와 같은 것이었다. 콘수알리아 역시 풍요의 신 콘수스(Consus)를 기념하는 고대 로마의 마차경기 축제였다. 연 2두 차례(8월 21일, 12월 15일) 이런 행사가 치러졌다. 에퀴이리아(Equirria, Ecurria)는 승마경기를 뜻하는 에퀴꾸리아(equicurria)에서 유래했는데, 이 역시 고대로마의 마차 혹은 승마 경기 축제인데, 마르스(Mars) 신을 위한 축제였다. 마르스 신은 농업의 신이자 전쟁의 신이었다. 축제일은 2월 27일과 마르스 신 이름에서 유래한 3월(마르티우스) 14일이었다. 바카날리아는 로마의 술의 신 바쿠스(Bacchus)를 기념하는 축제인데, 로마의 고대 종교 리베랄이아와 비슷하며 이 역시 그리스의 디오니수스 축제와 비슷했다. 종교적인 축제라고 하지만 사실은 종교를 핑계로 술을 마시고 황홀한 상태에서 즐기는 광적이고도 음란한 축제였다. 이 축제는 기원전 200년 경에 로마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축제가 남녀 간의 난교 혹은 음란한 성행위로 물의를 빚게 되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자, 로마의 역사가인 리비(Titus Livius, BC59~17AD)의 기록에 의하면 한 번은 관련자 7천명을 색출하여 대부분 처형했다고 한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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