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 '순교는 선교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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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 '순교는 선교의 문을 연다'
  • 승인 2004.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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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목사 / 만나교회

오스 기니스(Dr. Os Guinness)는 ‘당신을 향한 소명’이라는 책에서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그 분께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행위 전체, 우리의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으로 그 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 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라고 설파했다.

지금 온 국민이 안타까워하며 애도하는 고 김선일 형제의 짧은 삶과 비통한 죽음, 그의 삶 전체는 오스 기니스의 말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 투자된 특별한 소명이었다. 필자는 소명으로써 그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며, 이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을 깊이 묵상하며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됐다. 하나는 ‘기독교 선교의 역사는 피의 역사’라는 것, 그리고 ‘죽음 앞에서 신앙인의 모습’에 관한 것이다.

그의 피랍과 참수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대다수 언론의 지면에서 이라크 테러범들에 대한 분노와 피랍 사실을 미리 알았을 미국에 대한 배신감, 정부와 외교부에 대한 불신 등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자세하지는 않지만 고 김선일 형제가 중동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청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의 죽음이 단순히 테러범들에 의한 끔찍한 살인만이 아니라, 이라크 선교를 위한 순교적 피흘림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장래 희망은 ‘중동선교사’였다.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하며 지구본을 생일 선물로 받고 싶다고 했던 청년,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의 믿음을 소유하는 게 소원’이라고 기도했던 젊은이, 고난당하신 예수님 닮기를 소원했던 신실한 형제, 그는 주님을 닮아 33년여의 짧은 생을 살고 마감했다.

그러나 지금 가장 큰 영광 가운데 있을 그의 사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죽음으로 계속 말하고 있다. 그가 흘린 피는 순교적 피가 되어 우리나라와 아랍권의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선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였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죽음으로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복음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화형당하거나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로마의 한 여인이자 귀족이었던 펠리시타스는 기둥에 묶인 채 물소의 뿔에 받쳐 순교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그들의 피흘림으로 그토록 박해했던 로마의 국교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많은 신앙 선배들의 순교로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순교는 선교의 문을 열고 만다. 왜 하필이면 많은 이들 중에서 한국 사람, 그 중에서 중동선교의 비전을 품고 있던 김선일 형제가 처참한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 하나님께서는 고 김선일 형제의 피흘림으로 이라크 선교, 나아가 중동 아랍권 선교의 문을 여시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국내의 모든 언론에서는 그의 죽음 뒤에 ‘그 무엇’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중요 일간지가 담아낸 ‘내 목적은 취업이 아닌 선교’라는 제목이 전 국민의 마음판에 새겨지고 있다. 국민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분노와 슬픔은 이라크를 향한 선교적 기도로 승화돼야 한다. 김선일씨는 모든 국민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자신의 죽음으로 선포하고, 중동 선교의 문을 활짝 열기 위해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된 것이다.

특별한 소명을 다하고 있는 고 김선일 형제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기대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피흘림이 귀한 선교적 열매로 맺혀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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