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각자 다른 새벽이지만 동일한 은혜 경험하며 감사의 기도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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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각자 다른 새벽이지만 동일한 은혜 경험하며 감사의 기도 드려”
  • 보도팀
  • 승인 2020.12.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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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새해를 준비하는 편집국 기자들의 ‘릴레이 새벽기도ʼ

일찌감치 준비한 기획이었다. 새벽기도로 새해를 열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됐다. ‘이 시국에?’하며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편집국 기자들이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며 릴레이 방식으로 취재를 전환했다. 누구라도 24시간 기도할 수 있도록 교회 문을 열어두는 교회들이 있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새벽을 기도로 채우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비대면 방식으로 새벽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온라인 예배를 송출하는 교회들도 많았다. 기자들은 각자 상황에 맞게 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 새벽을 깨웠다.

DAY1 | 텅 빈 예배당을 채우는 사람들 
24시간 열려 있는 중랑구 영안교회
새벽에도 방역 지침 철저하게 준수


[손동준 기자] 코로나 시국에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공예배가 비대면으로 바뀌었지만,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기 위해 교회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까지 멈출 수는 없었나보다.

지난 24일 새벽. 서울시 중랑구에 위치한 영안교회(담임:양병희 목사)를 찾았다. 모처럼 교회 문턱을 넘는 기분이 묘하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교회의 출입문은 환하게 밝혀져 있다. 왠지 너를 기다렸다고, 어서 오라고 따뜻하게 반겨주는 것 같았다. 

공항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소독기를 지나자 “쏴” 하는 소리와 함께 소독 액이 분사돼 몸을 때린다. 팬데믹 발생 초기에 설치된 철통같은 방역 시스템은 새벽에도 쉬지 않고 가동되고 있었다. 담당 교역자가 출입구에서 QR코드 인식, 손 소독 등 기본적인 수칙을 안내했다. 이 얼마나 철저한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 큰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출입 인원을 시간대별로 나눠 제한하고 혹시라도 밀접하게 앉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교회 문을 24시간 개방해 누구든 언제든 기도할 수 있도록 한 교회의 배려가 친절하게 다가왔다. 

예배당 안은 십자가와 비상등을 제외하고는 조명이 꺼져있어 캄캄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수천 명이 앉아서 예배드리던 커다란 홀에 열 명 남짓의 교인들이 듬성듬성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울음 섞인 기도, 낮게 읊조리는 기도 소리가 귀가 아닌 가슴을 때렸다. 텅 비다시피 한 예배당에 울리는 작은 기도소리가 숭고하게 느껴졌다면 지나친 발상일까.

아이가 태어난 후 육아를 핑계로 새벽기도는 꿈도 꾸지 않았던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누군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교회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기도의 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에 감사했다. 

밝은 낮에는 잘 발동되지 않는 마음 속 어딘가의 버튼이 눌린 듯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내밀한 기도제목들이 튀어나왔다. 길고 긴 코로나 속에서 침잠됐던 마음도 기도를 하는 와중에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가량 지났을까. 예배당을 나서는데 아침이 밝아오는 냄새가 상쾌하다.조금만 더 열심을 내서 종종 새벽 미명을 기도로 깨우자는 각오를 다져본다.         

DAY2 | 성탄 새벽 작은 교회를 가다
부끄러운 예배자의 모습 회개하며 
재림의 때 주님 만나는 참신앙 기도


[이현주 기자]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오신 성탄의 새벽, 5시 새벽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 앞 예수사랑교회. 가끔 새벽기도를 위해 찾던 교회는 낯설지 않았다. 예배당에는 4명의 성도가 앉아 있었다. 정완순 담임목사는 매일 별을 보며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린 동방박사들에 대해 설교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을 날마다 기다리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기뻐 뛰며 찬양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를 갈며 쫓겨날 것입니까?”

문득 비대면 시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현실이 떠올랐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방역을 강조했고, 성도들은 온라인예배로 떠밀려 나갔다. 하지만 정말 떠밀려 나간 것인지 성도들 스스로 편안한 신앙생활을 선택한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지난 2월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1차 대유행이 시작됐을 때, 처음 비대면예배가 권고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TV방송과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교회가 정말 위험시설인가에는 의문이 들었다. 정완순 목사는 지난 2월, “8시 1부 예배 참석 성도가 1명”이라고 했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위험하다면 밀집이 덜한 시간에 예배를 드리거나 밀집이 덜한 교회를 찾아가면 된다. 지금도 집 앞 작은 교회들은 정부가 정한 20명을 채우지 못하는 곳이 많다.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갈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뿌리가 얕은 신앙인들의 핑계가 아니었을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만약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만날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해를 정리하면서 결국 ‘예배자’의 자세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할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나의 삶에서 예배는 1순위인가, 예배시간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하고 있는가, 내 만족을 위한 자기중심적 신앙생활은 아니었나…회개가 밀려왔다. 

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재림의 때,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새벽의 깊고 고요한 시간,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새해를 다짐했다. 대면과 비대면 예배를 오간지 수개월, 신앙은 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태해졌다. 2021년 새해에는 하나님께 칭찬받는 예배자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교회 문을 나섰다.           

DAY3 | “침체된 영성에 회복의 불씨 지펴”
워킹맘에 팬데믹, 찾아온 영적 침체
‘아무리 바빠도, 예배가 우선’ 깨달음


[김수연 기자] 사랑스러운 아들을 출산한지 어느덧 1년이 다 돼간다. 동시에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19가 발생한지도 비슷한 시간이 흘렀다. 산후조리원에 갓 들어갔을 당시 울려대기 시작하던 재난 문자를 보고, 맘속으로 ‘코로나19가 뭐지?’ 싶으면서도 ‘며칠 이러다 말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땐 내 영성이 이토록 길게 침체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 각오도 했지만 생각보다 육아는 훨씬 힘들었다.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먹고 싶을 때 제대로 못 먹는 건 그래도 참을 만했다. 문제는 전혀 상상치도 못 했던 팬데믹으로 안 그래도 육아에 밀린 교회 출석이 아예 ‘금지’ 되어버린 사실이었다. 갈수록 바닥나는 체력에 온라인 예배조차 게을리 한 나의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캄캄하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6일 마지막이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오랜만에 드린 새벽예배는 감개가 무량했다. 새벽 5시 45분, 부부는 한 몸이라며 ‘릴레이 새벽기도’에 동참해준 남편과 함께 TV 앞에 ‘각’ 잡고 앉았다. 평소 집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늘 남편과 번갈아가며 아기를 돌보느라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랬기에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이 낯설고도 감사했다.

유튜브로 우리 교회의 실시간 새벽예배에 접속하자 준비찬양이 흘러나왔다. 화면에 비친 예배당이 너무 반가워서 뛰어 들어가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20대 때 같은 청년부 소속이었던 우리 부부는 바로 이 성전에서 서로 모닝콜까지 해주며 같이 새벽기도를 다녔다. 당연했던 예배도 그립지만, 그 시절 지금보다 훨씬 뜨거웠던 내 믿음이 더 그리웠던 것 같다. 

그렇게 오랜만에 맞는 새벽예배는 참 좋았다. 비록 지금은 여기저기 육아용품이 널린 집이지만, 잠시 동안에도 영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설교를 듣는 내내 회개했다. 워킹맘이란 핑계로, 또 코로나19란 이유로 영성 관리를 소홀히 했던 스스로가 참 부끄러웠다. 아마도 지난 1년간 나는 육체적 피로보다 영적 침체에 더 눌려있었던 것 같다. 말씀보다 세상 소식에 더 우울해하고 분노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기도까지 마친 후, 남편과 짧게나마 나눔을 가졌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무리 바빠도 가정예배’였다. 

이번 새벽기도에서 받았던 제일 큰 은혜는 영적 회복의 동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날의 새벽예배는 당분간 삶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은혜는 잊혀지고, 도로 ‘죄’로 돌아갈 게 뻔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오늘은 오늘의 은혜로 살자”고 다짐하고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가장 귀한 시간을 내어드리기로 했다.

하나 더, 보고 싶은 우리 교회 식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예배당에서 같이 찬양하고, 맘껏 껴안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당장은 불평보다 내 영이 바로 서는 게 급선무다. 그저 코로나19가 종식돼 다시 모여 예배하기만 꿈꾸는 걸 넘어서, 지금부터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먼저일 것이다.     

DAY4 | 문 닫힌 예배당, 나만의 새벽기도회
인근의 교회들 모두 새벽에 문 닫아
영상 설교 듣고 홀로 골방에서 기도


[한현구 기자] 지난주일 아침, 때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새벽공기는 낯설었다. 해가 아직 고개를 내밀지 않은 새까만 하늘은 한밤중과 다르지 않았지만, 새벽 특유의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가 하루의 시작임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어느새 4년차.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에 밀려 새벽기도회에 나가본 적은 없다. 평소 출석하던 교회를 찾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주일에는 새벽기도회 일정이 없었다. 그 덕에 주일에도 새벽기도를 진행하는 교회를 찾아 한참을 인터넷 바다 속에서 헤매야 했다. 

이중 삼중으로 몸을 여미고 마스크로 중무장을 마친 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설렘을 안고 도착한 예배당 문은 견고히 닫혀 있었다. 겨우 관리실 집사님을 만나 사정을 물어보니 코로나 방역 수칙 강화로 인해 이번 주는 새벽기도회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터넷만을 믿고 전화로 정확히 문의하지 않은 것이 패착이었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아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별을 따라 베들레헴을 찾은 동방박사처럼 새빨간 십자가 불빛을 좇아 발걸음을 옮겼다. 인근 교회 5~6군데를 들러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허전한 침묵뿐이었다. 교회마다 입구에는 ‘신천지 금지’, ‘코로나로 인해 등록교인 외 출입금지’ 등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마치 ‘아무나 받을 순 없다’는 의미로도 들렸다.

어릴 적 기억 속의 교회는 언제나 열려 있는 곳이었다. 상처를 입은 사람,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 찾아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던 장소였다. 하지만 코로나가 전 세계를 뒤덮은 시대, 활짝 열린 예배당은 옛말이 됐다. 무언가 씁쓸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문이 열린 교회를 찾아 동네 한 바퀴를 돈 덕에 이미 의상은 갖춰져 있었고 정신도 맑았다. 경건하게 책상에 앉고 원래 가려고 했던 교회의 새벽기도회 영상을 찾아 재생버튼을 눌렀다. 아쉽게도 영상은 목사님의 설교 메시지가 전부였다. 상상하던 새벽기도회의 풍경이 아닌 것 같아 잠시 영상을 멈추고 기도의 무릎을 꿇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예배와 경건생활의 책임을 너무 오래 미뤄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기도의 자리에 앉으니 수많은 얼굴들이 머리를 스쳐 지났다. 은퇴를 앞두신 아버지, 늘 전도에 힘쓰시는 어머니, 둘째를 출산한 누나, 회사 식구들과 교회 동역자들, 믿지 않는 친구들까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눈을 뜨니 시간은 30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목사님의 설교 메시지를 들으며 나만의 새벽기도회를 마무리했다.

DAY5 | 거실에 둘러앉아 삼형제와 함께
사춘기 맏이도 싫은 소리 않고 ‘순종’ 
가족과 함께하며 경험한 특별한 은혜


[이인창 기자] 한파가 깊어질수록,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될수록 예배 공동체는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그저 예배당에 앉아서 설교를 직접 듣고, 두꺼운 마스크를 쓰더라도 목소리를 울려 찬송하는 일상이 이처럼 소중했던 때가 있었을까. 다시 TV 앞에 앉아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얼마 만에 사랑부 교사로 예배를 드렸는데 그마저도 꿈같이 지나갔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부천 성만교회는 새벽예배를 온라인으로 송출하고 있었다. 신문제작을 마치고 택시 안에서 이어폰으로 온라인 새벽예배를 처음 드렸다. 이후 가능하면 온라인으로 새벽예배 참여하고 있다. 비록 작은 휴대폰 화면이지만,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기도의 울림이 전해진다.

담임목사님은 “성도는 성도로서 할 일을 하면 되고, 코로나는 코로나가 할 일을 하면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이 말을 떠올릴 때가 요즘은 참 많다. 예배가 성도가 해야 할이라면, 혼자만의 온라인 새벽예배가 아니라 온 가족이 한번 새벽예배를 해보기로 했다. 아내는 흔쾌히 동의해주었고, 싫은 소리 할 줄 알았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도 따라주었다. 6살 막내 아들은 뭐 … .

출근을 앞둔 28일 월요일. 평소보다 이른 시각, 교회 사정으로 온라인 예배를 이날은 드릴 수 없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새벽가정예배를 드렸다.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읽었다. 한 주를 시작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 온 가족이 코로나 때문에 어렵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잘 이겨내자고 이야기했다. 

목회자였던 아버지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편안하게 말씀을 전하진 못했다. 얼마나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았던지 솔직히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에 가족이 마주앉아 찬송을 같이 한 장 부르고 성경을 읽고,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은혜가 되는 시간이었다. 

비록 막내는 내내 내복 바람으로 엄마 품안에 안겨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루를 준비하는 기도를 하는 순간이 소중하다. 

“하나님 아버지! 코로나 때문에 온 세상이 얼어붙은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것 감사드립니다. 항상 우리의 삼형제가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게 하시고, 평생 예배 공동체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이 새벽에 드리는 기도를 허락해주시길 우리 부부는 간구했다. 코로나 때문에 방안에서 드릴 수밖에 없는 우리 가족의 새벽예배는 비록 서툴고 어색했다. 

다행히 새벽에 온 가족이 마주앉는 것을 아들 녀석들이 싫지는 않는 듯하다. 우리는 이번 주 다시 가족 새벽예배로 모이기로 했다. 2021년에는 그 횟수가 점점 더 늘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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