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의 총칼도 두렵지 않았던 ‘순교신앙’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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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의 총칼도 두렵지 않았던 ‘순교신앙’을 아십니까?”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0.06.2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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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70주년 순교신앙이 주는 교훈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 한국전쟁 70년 맞아 신규 순교자 추서
집단순교 등 추서되지 못한 순교자 400여명의 신앙에 대해 조명
피난 거부하고 교회를 지키다, 핍박 속에서 예배를 드리다 죽어가
오는 7월 28일 용인 순교자기념관에서 신규 추서 기념예배 드려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성도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정부가 권고하는 기준대로 생활방역만 잘 지키면 예배를 드리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온라인 예배로 주일을 대체한다. 예배 불출석이 장기화되자 교회 안에서는 코로나가 원인이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이 그만큼 약해져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예배가 더 이상 소중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신앙을 편리함에 맞추는 시대에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가 새롭게 추서하는 400여 순교자들의 신앙이 더욱 가슴 깊이 다가온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혹은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군의 총칼에 스러져간 신앙의 선배들. 

본지는 6.25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가 새롭게 추서하는 순교자들의 삶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예배를 등한히 하는 시대, 선진들의 순교 신앙이 주는 교훈이 예배를 회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엄청난 핍박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의 핏값으로 오늘의 부흥을 일궈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옥살이를 하다 중병을 얻거나 목숨을 잃은 선배들은 물론이고,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교회를 지키고자 애를 쓰다가 참혹한 죽음을 당한 이들도 있다. “목사는 교회를 지켜야 한다”며 피난을 거부하고 교회에 남았던 성북교회 김태주 목사. 공산군의 점령 소식에도 교회를 수호하고자 기도하며 예배당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순교한 김응락 장로, 교회를 탄약 창고로 쓰겠다는 요구에 거부하다 체포돼 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풍천교회 박영근 목사 등 한국교회는 지난 1986년 약 600여명의 신앙인의 죽음을 기념하며 ‘순교자’로 추서했다. 
그리고 올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각 교단에서는 순교자로 지정했지만 공식 추서가 되지 못한 신앙인과 집단순교로 개개인의 이름은 기념되지 못했던 순교자들을 찾아내 추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65명 몰살당한 야월교회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야월리에 위치한 야월교회는 1908년 세워진 유서 깊은 교회다. 야월교회가 6.25의 비극을 맞이한 것은 1950년 9월 국군과 유엔군이 목포에서 함평 영광을 수복할 때 기독교 인사와 우익 인사들이 환영인사를 하러 나간 것이 화근이 됐다. 이때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인근 야산에 숨어 있던 인민군이 있었다. 

인민군은 야월교회 김성종 영수, 조양현 영수, 최판섭 집사, 최판원 집사 등을 수문 앞으로 끌고 가 처형하고 수장했다. 그들의 가족과 성도들은 10미터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했다. 추후 이 곳에서 발굴된 사체가 80구라고 하니 마을이 얼마나 참담한 지경이었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야월교회는 공산군에 의해 전 성도 65명이 몰살당했고, 예배당도 불타 없어졌다. 

65명의 성도가 죽임을 당한 병촌성결교회.
65명의 성도가 죽임을 당한 병촌성결교회.

“공산군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
병촌성결교회는 1933년 강경성결교회의 도움을 받아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에 세워졌다. 1943년 신사참배 거부로 강제 폐쇄된 신앙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다시 문을 연 병촌성결교회는 6.25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 소식에 북으로 후퇴하던 인민군이 지주와 경찰관 가족,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학살하며 피해를 입었다. 

1950년 9월 병촌성결교회 성도 66명은 인민군이 휘두른 삽과 몽둥이, 죽창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성도들의 신앙은 의연했다. 정수일 집사는 만삭의 몸에도 두려워 않고 “공산당은 패전하니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소리쳤다. 죽음 앞에서 “하나님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큰소리로 기도했다. 사건 당일의 증언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주옥 집사에 의해 알려졌다. 김주옥 집사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논산내무소에 감금됐다가 유엔의 비행기 폭격을 틈타 탈출했다. 훗날 고향 논산으로 돌아와 노미종 집사와 함께 교회를 재건하고 병촌교회 1대 장로가 됐다. 

기성 총회는 임자진리교회 순교터에 기념비를 세웠다.
기성 총회는 임자진리교회 순교터에 기념비를 세웠다.

목숨 걸고 밀실예배 드린 진리교회
전라남도 임자도에 위치한 임자진리교회는 문준경 전도사가 노방전도를 다니다가 개척한 교회다. 진리교회 첫 성도였던 이판일 장로가 예수를 영접한 일화는 유명하다. 노방전도를 다니던 문준경 전도사에게 쪽복음을 선물받은 이판일 장로는 문 전도사와 대화하며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 배우면서 술과 담배를 끊고 조상제사를 없애버렸다. 1934년 이성봉 목사의 집례로 진리교회를 세우고 최초의 세례교인이 됐다. 12년 후인 1946년에는 진리교회 최초의 장로가 됐다.

평탄할 것 같은 신앙도 한국전쟁을 비껴가지 못했다. 임자도에 공산군이 들어오면서 1950년 9월 진리교회는 출입문이 폐쇄되는 탄압을 받는다. 하지만 이판일 장로는 성도들과 밀실예배를 드렸고, 곧 체포돼 목포로 이송됐다. 이후 석방된 이판일 장로는 잠시 피하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10월 4일 저녁 성도 48명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 현장에 공산군이 들이닥치면서 모두 체포돼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판일 장로의 순교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죽음 앞에서 이판일 장로는 “주여, 이 부족한 종과 우리 모두의 영혼을 받아주소서”라고 기도하며 공산군의 용서를 빌었다. 임자진리교회 48인의 순교지는 2009년 신안군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됐다. 
순교자기념사업회는 임자진리교회 이판일 장로를 비롯해 이판성 집사, 김소예 집사, 김동촌 집사 등 48명을 순교자로 추서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인민재판
전남 영암읍교회는 1915년 조명선 조사의 기도처로 출발했다. 1920년 첫 교회당이 세워졌고 일제 치하에 예배당이 전소되는 고난을 겪었으나 성도들은 1950년 뜻을 모아 예배당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일어난 한국전쟁은 교회의 비극을 불러왔다. 인민군은 영암읍교회를 주둔지로 사용했고 미처 피난가지 못한 성도 24명을 인민재판에 회부했다. 영암읍교회 성도들은 한꺼번에 몰살된 것이 아니라 인민군이 수차례에 걸친 검문으로 기독교인만 가려낸 후에 학살당했다. 1953년 영암이 수복된 후 김원섭 목사와 살아남은 성도들에 의해서 순교자의 유해를 발굴했고, 교회 묘지에 안장했다. 

순교의 신앙 위에 교회 세워져
이처럼 신앙의 선배들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예배를 드린다는 이유로 모진 핍박을 받았고 죽음에 이르렀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그들은 결코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다. 원산 석완사교회 강승남 목사는 교인 심방 중에 후퇴하는 공산군과 맞닥뜨려 피살당했고, 수원 거모리교회 김명성 목사는 피난을 거부하고 교회를 지키다가 피살됐다. 갓난아이가 있어서, 임산부라서, 나이가 많아서 숱한 핑계거리가 있음에도 이들은 결코 예배에 빠지지 않았다. 죽음보다 영광된 구원과 영생의 길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순교자기념사업회는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이 피 흘린 자리에 세워졌다. 신앙의 선배들은 어떠한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성도들의 삶이 위축되고 신앙이 나태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교회가 순교신앙으로 돌아가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순교자기념사업회는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새롭게 추서하는 400여명의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오는 7월 28일 용인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서 추서예배를 드린다. 용인 순교자기념관 역시 새로운 순교자를 맞이하기 위해 새롭게 리모델링 해 한국교회 앞에 선보이며, 새로 추서된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순교열전’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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