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본능, 사람은 속아도 하나님은 속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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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본능, 사람은 속아도 하나님은 속지 않아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6.1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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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⑱ -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잠 15:8)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으로 한국에서 흥행몰이를 했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원제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즉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에서 ‘추한 놈’은 한결같은 악당보다 더 혐오스런 인간, 즉 위선적 인간을 가리킵니다. 사실 사람이 겉모습이라도 좋은 사람으로 꾸미려다 보면 좋은 일도 할 터인데, 그 좋은 일부분보다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이 우리에게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의 제사는 미워하시고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도 이 점에서는 비슷한가 봅니다(잠 15:8). 여기 ‘미워한다’는 단어는 구토를 일으킬 정도로 강한 거부와 멸시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악인일수록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데, 그가 기도하는 것을 마다하실 하나님은 아니실텐데, 왜 악인의 기도를 혐오하신다 하셨을까요. 그것은 기도라는 외적 행동이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지 못하는 분리현상, 바로 위선 때문이며, 겉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종교생활을 하던 바리새인들을 예수께서 그토록 호되게 꾸짖으셨던 것과 동일한 이유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잠언에서 악인은 단지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내면의 타락이 고착되어 악한 생각이 제2의 본능처럼 되어버린 사람을 가리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회개할 마음이 없는 자들의 제물과 찬송 소리를 악취와 소음으로 여기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저버린 사울을 폐위시키고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새 왕을 세우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이새를 찾은 사무엘이 장남 엘리압을 보고선 ‘바로 이 사람이구나’ 단정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참으로 촌철살인입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사울의 변절과 타락에 그렇게 실망하고 괴로워했던 사람, 평생에 전한 예언이 하나도 어긋난 일이 없었다는 놀라운 영성의 소유자 사무엘도 사람의 외모 인상에 속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폐부를 살펴 아십니다.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15:11). 그러니 우리는 자신이 불순한 동기에 의해 움직이지는 않는지 염려해야 마땅합니다. 자기 마음에 떳떳하다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16:2). 두려움을 일으키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맥락에 연결해 읽을 때 3절의 뜻이 분명해집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16:3). 우리는 3절 하반부의 성취만을 바라지 말고,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자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높은 기준도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께서 나의 내면을 환히 아신다는 사실을 정말로 이해하고 그것을 공포가 아닌 안도감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분을 경외하고 그분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가장 행복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 삶을 택한 이에게는 복된 길이 열려 있습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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