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괴물 몰아내고 생명 넘치는 교회만 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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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의 괴물 몰아내고 생명 넘치는 교회만 남길
  • 강석찬 목사
  • 승인 2018.02.2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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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종이신문이 쇠락하는 시대다. 대한민국의 많은 유명 일간신문들이 경영난으로 아우성이다. 겨우 광고로 명맥을 유지하는 신문사들도 부지기수다. 광고수입을 올리려니 광고주 기업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특히 권력과의 관계는 더욱 어렵다. 신문의 정신을 살리려 할 때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하게 된다. 어떤 기자들은 가슴앓이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나라 언론현실의 단면이다. 

게다가 활자 종이신문을 읽지 않는 시대이다. 인터넷으로 빠르게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 그것도 건강한 뉴스보다도, 나쁜 뉴스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신문사는 황색뉴스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선한 사마리아인 소식보다, 타락하고 불의한 지도자들, 명사들의 욕망배설 뉴스를 더 좋아하는 독자라고 판단해서 시궁창뉴스를 좇다보니 신문의 품격도 사라지고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서, 강산을 세 번이나 변하게 할 세월을 그리스도교 신문으로서 언론의 정론(正論)을 지키려 애써온 기독교연합신문의 창간 30주년의 노고를 진심으로 축하(祝賀)한다. 30년 동안 활자로 버틴(?) 것 정말 장하다. 뜨거운 물개박수를 보낸다. 

발행인 장종현 목사는 기념사에서 “교회를 살리는 신문이 되겠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지만 급격한 성장이 물질만능주의를 불러오고, 정결한 가치보다 세속적 풍요에 만족하는 삶의 문화에 젖어든 교회의 세속화의 부정적인 변화를 안타까운 상황이라 하였다. “세상의 원리가 교회를 지배한다면 그곳이 교회일 수 없다”고까지 질타하면서, 교회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정말 속이 후련해지는 결단이다. 

‘교회를 살린다.’ 옳은 방향이다.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교회를 살린다’고 할 때, 교회가 ‘죽었기 때문에,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죽을 병에 걸렸기 때문에’가 전제된다. 교회가 죽을 수 있을까? 주님의 교회는 결코 죽을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은 교회란 주님의 교회가 아니다. 곧 사람의 교회란 의미이다. 

시론자의 걱정은 사람의 교회가 죽었는데, 주님의 교회를 몰아내고 만든 죽은 교회를 만든 사람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그들이 죽인 교회를 살려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혹시 살리고자 하는 교회가 ‘괴물(怪物)이 된 교회’는 아닌가? 그렇다면 절대로 살리면 안 된다. 그래서 부탁이 있다. 

요즘 온 나라가 최영미 시인의 ‘괴물(怪物)’이라는 시로부터 시작된 ‘Me too, With you’운동의 파고가 높다. “…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시인의 절규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괴물(怪物)의 사전적 뜻은 ‘괴상한 물체, 괴상한 사람’이다. 괴(怪)자는 ‘의심할 괴, 괴이한 괴, 의심스럽다, 도깨비, 요괴, 유령’의 뜻이 있다. 한마디로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사람이 아닌 것이 권력을 쥐면,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 그래서 죽음 그곳에는 여러 형태의 괴물이 존재한다. 

괴물 교회는 그냥 죽게 내버려 두고, 세상의 물질제일 가치관을 따르며 커져버린 괴물들의 짙은 그림자 속에 묻혀 억울하게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주님의 교회로 서 있지만, 힘들어하는 교회를 살려야 한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앞에서 양심과 영혼을 돌이켜 보게 되듯이, ‘교회를 살리는 신문’을 통해서, 죽은 교회 안의 수없이 많은 ‘괴물’들을 몰아내고 생명력 넘치게 세상을 변화(구원)시키는 주님의 교회들이 넘치는 그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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