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흐름에 정체성 잃어가는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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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흐름에 정체성 잃어가는 목회자
  • 승인 2003.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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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의 제사장적 직임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모두 끝났는가. 구약의 제사장은 희생과 헌신을 위해 출생부터 구별된 삶을 살았고 특별히 하나님의 일만을 위해 구별된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 품 안에서 기거토록 평생을 봉사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다른 지파들에게는 약속된 분깃을 전혀 받을 필요가 없었다. 기계적인 적용은 위험하지만 현대를 사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역할론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오늘날의 목회자와 비슷한 직임을 부여받은 구약시대 제사장의 그것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죄의 문제때문에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모습은 아니더라도(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기에) 고단한 성도의 삶에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소박하고 끈질긴 목회자의 제사장적 직무수행이 그립다.

교회와 노회(지방회·연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제사장직무 대신 훤칠한 외모에서 풍기는 정치력과 리더십에 더 많은 점수를 주는 시대가돼 서글프다.

옅어지는 '대속감격' 대신 축복권 강조 목회자의 직무와 관련한 성경의 답변은,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책무를 밝힘으로써 대신하고 있다. 이 부분을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낸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직무를 다음 세가지 차원에서 다룬다.

△사람의 죄를 속죄하는 일(히2:17)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와 탄원을 올리는 일(히5:1-9)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일(히7:16).

이외에도 학자에 따라서는 골로새서(1:18-22)를 인용하며 ‘그리스도의 피로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모든 믿는 자를 거룩하고 결백하고 흠없는 자로 하나님께 보여주는 것’으로 요약하기도 한다.

특히 종교개혁 이후 주목하기 시작한 요한계시록 1장5절-6절까지 구절을 인용, 그리스도는 우리를 왕으로 제사장으로 만드셨다고 강조하며 만인제사장설이 갖고 있는 ‘평신도=제자=성직’개념을 재확인하기도 한다.

여기서 목회자의 제사장적 직무를 되돌아보는 것은,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 속에 여전히 팽배해 있는 ‘성공신화’ 때문이다.

그럴듯한 차림새의 목회자나 남루한 차림의 목회자를 바라보는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의 차별의식은, 어쩌면 찌들어가는 목회자들의 성공신화의 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성도들의 비뚤어진 신앙행태의 상당부분 책임이 목회자로부터 비롯됐다는 얘기다.

2, 3층 구조로 리모델링하는 교회본당 개축공사를 비롯 교육관이니 봉사관이니 하는 교회부속건물 확장공사얘기를 들을 때마다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어느누구도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하나님 축복’을 도식화해서 예배때마다 집회 때마다 강조하는 모습이다.

디지털 첨단사회를 사는 현대사회에서 목회자의 직무는 과연 무엇일까. 수천년전 부여된 성경의 직무는 아직까지 유효한가. 지구 반대편 소식을 거의 같은 시각에 알게되는 정보의 홍수시대 속에서 목회자의 제사장적 직무는 오히려 진부한 역사의 소산은 아닐까.

최근 청부론으로 교계의 주목을 받았던 김동호목사(높은뜻숭의교회)는 시대에 걸맞는 목회자상을 창출할 책임이 교회에 있음을 밝혔다. 그는 “저축하는 목회자를 비난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고 “목회자는 현대사회가 전문분야로 운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분야의 전문가로서 월급쟁이가 돼야 당연하다”고 전문가로서의 현대 목회자상을 요약했다.

차라리 그는 오늘날 교회가 전문분야로서가 아닌 아마추어화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준비되지 못한 어정쩡한 사람들이 교회지도자로 나서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태웅박사(한국해외선교회 이사장)도 현대 목회자에 대해 “경건성만으로는 힘든 시대가 됐다”고 말하고 “경건성에다가 현실성을 첨가해야 능력있는 목회자로 인정받게 됐다”고 밝혔다.

여하튼 현직 목회자나 선교현장의 사역자들이 바라보는 현대사회의 목회자는 적어도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완돼야 제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며 목회자들의 부단한 자기단련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각종 목회자세미나가 열리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교회건축 관련 정보부스와 각종 목회지원 세미나 광고가 봇물을 이룬다.

히브리서기자가 밝힌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무에는 만인구원을 위해 탄원하는 역할과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일 그리고 대속에 따른 속죄가 포함돼 있다.

제사장 직분을 가진 목회자는 이 가운데 그리스도 밖에는 수행할 자격이 없는 ‘대속’은 제외하고, 나머지 두 직무 즉, 만인구원을 위한 탄원과 간구·하나님 신성을 드러내는 일은 반드시 수행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교회부흥에 매달린 나머지 혹은 자신의 계파보존과 정치적인 이해득실 때문에 그 직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구약성경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했던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12지파를 대신해 제사장으로 봉사했다. 레위제사장은 12지파를 상징하는 12보석이 박힌 에봇을 입고 지성소로 들어갔다.

이스라엘 전체의 죄문제를 놓고 하나님의 자비를 호소해야 했던 것이다. 마치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작정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막기위해 의인론으로 탄원했던 것처럼 구약 레위제사장도 이스라엘의 보존을 위해 그 직무를 수행해 냈다.

레위제사장의 직무는 단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길 간구 하는 그것뿐이었다. 그것을 통해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은 감히 상상도 못할 죄였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 수행만이 유일한 직무였다.

이같은 성경의 역사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했던 휘장이 찢어지며 절정에 달한다. 그리스도의 대속사건 이후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자들이 보혈 은혜로 제사장에 위임된 것이다. 이제 제사장인 우리 성도들이 해야할 직무는 무엇인지 한번 되짚어보아야 할 때다.

제사장에 위임받은 성도들은 마치 구약 레위제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 이전에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신약에서도 히브리서 기자가 거듭 강조하는 것처럼 만인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탄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제사장으로서 목회자는 성도들의 제사장적 탄원과 간구가 꾸준히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있는 이문장교수는 한 글에서 목회자의 신분을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영적인 일을 수행하는 자”라면서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실제로 삶의 고비고비에서 행동으로 옮겼는지를 묻는 사람”이라고 썼다. 가르침대로 삶을 사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실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촉매역할이 있다는 얘기다.

목회자의 제사장적 직임은, 평신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희생적이며 헌신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부흥이 없는 현재 한국교회는 희생적이지도 헌신적이지도 않다. 있다면 극히 일부분만 그 위대한 하나님의 제사장적 직임을 수행할 뿐 아직까지 집단적인 헌신은 없는 실정이다.

이문장교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헌신은 많음에도 불구하고 산발적이고 조직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무기력’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는 제사장적 직임을 수행가능케하는 ‘목회자 집단문화’를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희생과 헌신이 생략된 채 이루어지는 목회자 직무수행은, 명예와 안정목회를 보장하는 시스템목회의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영호차장(yyh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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