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신학자만이 참된 신학교육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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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신학자만이 참된 신학교육 가능해”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6.08.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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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이 변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21 신대원 변화, 신학교수에 달렸다
▲ 벡석대 신대원생들이 스승의 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선물했다. 백석대는 신대원 교수 채용에 있어 ‘영성’에 더 무게를 둔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신학교를 세운 목적은 단순하다. 그것은 학문을 널리 전파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 신학교 설립의 첫째 목표였다. 예를 들어 감리교신학대학교의 경우, 1887년 미국 감리교 한국선교회가 목회자 양성을 위
해 교육을 실시한 것을 연원으로 보고 있다. 이후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교육과정이 확대되었고, 1907년 협성대학교가 개교했다.

과거 목회자 양성은 ‘신학교’, 혹은 ‘성경학교’의 몫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대학교 전신이 성경학교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잘 가르치는 것, 그것이 목회자 양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학교육이 성경을 떠나 ‘학문’으로 비중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1980년 교육부가 목회학 석사(M.Div.) 학위를 공식적으로 인가했기 때문이다. 당시 교육부는 M.Div. 과정을 허락하고 각 신학대학교들이 학위과정인 신학 대학원을 운영하도록 했다. 1970~80년대 신학교의 난립 속에서 목회자들의 질적 향상이 시급하다는 고민의 결과였지만 장기적으로 목회학 석사학위 과정의 운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학문’의 틀에 가두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소위 목사들의 ‘가방끈’은 길어졌지만 신학과 목회 현장의 괴리가 커졌으며, 점차 목회현장이 요구하는 교육을 수용하지 못한 채 ‘신학자’들이 원하는 커리큘럼으로 목회자 양성과정이 변질되어 가기 시작했다.

신학교육을 주도하는 신학교수. 신학교육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서는 신학자 곧 가르치는 신학교수들의 변화와 책임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신학과 신앙의 괴리, 신학교와 교회의 괴리가 커져갈 즈음, 신학교육의 문제가 바로 신학자들에게 있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백석학원 설립자 장종현 목사가 2003년 10월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제2차 국제학술대회 폐회설교에서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고 선언 한 것 이다.

당시 장종현 목사는 “신학은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 그 요체이고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신학이 학문에 머물면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체감한 것이다.

장종현 목사는 “서구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학자들이 신학대학원 커리큘럼을 서구식으로 변화시켰고, 하나님의 말씀을 비판하고 평가하면서 인간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신학을 활용해왔다”고 지적했다. 교회를 살리고 성도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할 목회자 양성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심어주지 못한 채, 신학을 학문으로만 가르쳐 목회 현장에서는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없는 기형적인 교육을 시켜왔다는 것이 장 목사의 주장이다.

성결대 서인선 교수 역시 ‘한국의 신학교육 이대로 좋은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서구 신학을 추종하고 지나치게 의존하는 신학자들의 문제를 꼽았다. 서 교수는 “한국 신학교육 문제의 근원을 한국 신학교육의 서구화 또는 서구 신학교육의 추종내지는 복사에서 찾는 것도 큰 일리가 있어 보인다”며 “이와 관련하여 덧붙여야 할 것은 가르치는 교수의 문제” 라고 밝혔다.

목회자들에게 교육부 인가의 학위가 자격으로 주어진 이후 대부분의 신학교는 학위를 배출할 능력을 가진 박사학위 소지자들을 교수로 초빙했고, 학문적 성과를 꾸준히 촉구한 것이 곧 목회 현장과의 괴리를 가져온 원인으로 지목했다.

서 교수는 “한국교회 초기에는 성공한 목회자가 신학교수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박사학위를 요구하게 된 상황에서 대학의 현실은 자연적으로 학문에 치중하는 우를 범하게 됐고, 그 결과로 신학교육에 이론과 실천 혹은 학문과 영성의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하나님을 아는 신학자가 없다
신학교 설립자이자 운영자인 장종현 목사가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신학교 졸업생 중에서 순수하게 복음에 헌신하고자 교회 개척에 뛰어드는 숫자가 줄어들고 있고,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앙을 잃거나, 성경 읽을 시간조차 없이 공부하는 신학교의 현실을직시했기 때문이다.

실제 본지 설문조사에서도 신대원생들이 일주일 동안 평균적으로 성경을 읽는 시간은 1~2시간 미만이 35.7%로 가장 많았고, 기도시간 역시 하루 평균 52분에 불과했다. 개인전도 경험은 1년간 평균 1.9명으로 전도사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복음 전파의 소명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대원생들은 ‘성경강해’(35.7%)와 ‘영성훈련’(27.7%)을 강화를 필요
로 하고 있었다. 8.3%는 ‘찬양인도’, 6.0%는 ‘설교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모두 목회와 관련된 구체적인 과목의 개설을 희망한 것이다.

그러나 목회 현장이나 영성관련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신대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신학자들 자체가 목사직분은 가지고 있지만 목회경험이 전무하고, 박사학위에 도달하기 위해 10년 이상 학문적 연구에만 매달리다보니 실제 목회 현장과는 동떨어진 커리큘럼을 짤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한신대학교의 경우 교단의 한 중견 목회자가 “신학교수 중에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다”는 주장에 충격을 받아 신학교수들을 중심으로 ‘신학교육선언’을 발표하며 개혁을 시도한 바 있다.

“신학교수 중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신학이 얼마나 사변화 되고 화석화 되었는지를 부연하는 표현이다. 장종현 목사는 “스스로 전문가를 자처하는
어떠한 신학자도 그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그는 진정한 신학자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신학을 아무리 전문적으로 많이 연구했다고 해도 그의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있지 않다면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제대로 전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을 ‘신학자’
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그는 “신학교의 교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그의 믿음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해야만 강의실에서 이런 영적인 것을 전할 수 있다”며 교수들의 신앙과 영성을 강조했다. 가르치는 신학교수들의 영성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신학교육이 결코 변화될 수 없다는 뜻이다.

신앙의 귀감이 되는 교수 뽑아야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송인규 교수는 “신학 교수라면 학문적 역량도 충분해야 하지만 모름지기 개인적 신앙, 인격, 생활에서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며 “신학교는 일반 교육기관이 아니고 목회자는 그저 평범한 전문직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치는 이의 개인적 순전성과 일관성은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신학교수는 “목회적 마인드를 견지해야 하고 또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신학교의 교육과 훈련이 바람직한 수준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육의 책임을 맡은 교수들에게서 찾아야 한다”며 네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첫째는 신학교 교수가 기독교인으로서 영적 성장과 신앙 성숙의 책임에서 면제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교수직에 대한 인식이 세상적 가치관으로 말미암아 적잖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 셋째는 동료 교수들과 깊은 교분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과 마지막 넷째는 교수들의 주업무인 가르치는 일과
관련하여 바람직한 교육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 등이다.

송 교수는 “신학교 교수가 개인적 신앙 성숙이나 영적 진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든지, 또는 구체적인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의 신학은 도대체 무슨 신학이냐”고 반문하며, “신학교수도 하나님 앞에 하나의 기독교인이며, 교수들도 하나님과의 교제, 예배 정신 및 경건훈련, 사죄의 기쁨과 거룩의 추구, 그리스도를 닮음, 용서와 사람, 사명의식을 견고히 함, 주님의 주권 하에 자신을 쳐 복종시킴 등의 면에서 진보가 있어야 하고 다른 기독교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신대 이관직 교수도 “기독교대학은 신앙적인 부분은 말할 나위가 없고 심리적으로 ‘비교적 괜찮은’ 수준의 성숙도를 가진 교수들이 많아져야 한다”며 “아무리 예수님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고 설교를 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생명수를 공급받고 산다는 교수들이 일반대학의 교수들보다 심리적 성숙도가 떨어진다면 학생들은 감동 대신 좌절감과 혐오감을 느낄 것”이라며 인격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송인규 교수는 “바림직한 신학교육의 중요한 관건은 지도자로서의 자격 조건이 갖추어진 교수들의 확보에 있다”며 “신학생들이 교육을 받는 동안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신학교 교수들인 만큼, 개인의 신앙 인품과 영적 성숙도가 타인의 귀감이 되는 이들, 목회자로서의 마인드와 심정
을 가진 이들을 뽑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시 말해 “강의와 설교면에서도 뛰어나야 하지만 목회자로 나선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듬어져 있는 신앙적 열정과 인격, 영적지도력, 선지자적 안목을 가진 신학 교수들이 많아질 때, 신학교육과 훈련도 향상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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