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지속하라!
상태바
기억하고 지속하라!
  • 서진한 목사
  • 승인 2016.04.05 2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진한 목사·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최근 뉴스를 통해 시인 윤동주에 대한 일본시민들의 지속적이고 뜨거운 열기를 보았다. 사람들은 그의 시에 심취하고 그의 시를 연구하며, 일본 내에 있는 그의 유적을 보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두 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끊이지 않고 해온 일이었다. 무슨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들 같았다.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1945년 2월 형무소에서 스물여덟 살에 꽃다운 삶을 마감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영향 아래 성장했으며, 인생과 국권을 강탈당한 조국의 고통에 고뇌했다. 그리고 침략국의 나라에서 침략에 저항했다는 죄명으로 옥에 갇혀 죽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사후 70년이 넘도록 윤동주를 사랑하고 그의 시를 연구하는 시민 모임은 일본이 아니라 이 나라에 훨씬 많이 있어야 한다. 뭔가 거꾸로 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일본은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연구 분야에서도 그렇다. 당장 경제적 효과를 낳지 않아도, 꾸준히 오래 한 분야를 연구한다. 참 부럽다.

그에 비해 우리는 지나치게 실용적이다. 사회적 관심도 짧기가 그지없다. 아마도 한국 근대사가 침략과 해방, 분단과 전쟁, 급격한 경제성장 등으로 상징되는 격변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기억하는 존재다. 역사의 기록은 그 기억의 확장이다. 기독교 역시 기억이 중요한 종교다. 기독교는 유달리 역사적이다. 보편진리를 추구하는 타종교들과 달리, 기독교 신앙은 역사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곧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것은 기원후 1세기에 유대 땅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사건이다. 교회는 매 주일 이것을 ‘말씀’과 ‘성만찬’을 통하여 반복하며 그 의미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기억의 교체가 빠르고 어느 기억도 오래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고통스러운 것에 대한 기억이 짧다. 많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초기 한국인 신앙 선조들의 헌신과 열정,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 해방되자 풀려난 옥중성도들의 가슴 아픈 질책 등 고통스럽고 때론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를 연구하고 기억하고 되살리는 일은 한국교회가 꼭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옛날 일이니 기억에서 지워졌다고 치자.

하지만 최근 일이라고 다르지 않다. 2년 전 교계는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 대대적인 참회집회를 열었다. 온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의 비극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눈물로 참회하며 단에 올라서서 스스로 회초리를 맞던 그 많은 지도자들은 세월호 2주기를 맞아 무엇을 하고 있는가? ‘통일은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말을 따라 통일 관련 집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던 단체들은 남과 북의 모든 대화 통로가 끊어지고 대결과 대립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그와 관련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과거는 단지 청산하거나 빨리빨리 잊어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제대로 살아 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미래도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이 사라진 곳에는 성찰과 비전과 명예도 사라지고 오로지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비뚤어진 현재만 남게 된다.

유대 땅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2,000년이 넘도록 사라지지 않고 이 땅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사회는 기억을 무시하거나 왜곡하거나 말살하는 데 익숙해 있지만,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