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이중직 논란 다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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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이중직 논란 다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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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1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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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한 목사·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신년 초라 말하기 뭐하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짚고 싶은 일이 있다. 목사 이중직 문제다. 목사 이중직 문제는 몇 년 사이에 꾸준히 논의되었고, 일부 교단 총회에도 안건으로 상정되었으며, 올해에도 간헐적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 논의를 거칠게 정리한다면 이렇다. 목사는 목회에만 전념해야지 다른 ‘부업’(副業)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목회만으로는 생계가 불가능한 목사들이 있으니 바울이 천막을 만드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했듯이 목사도 부업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 있다.

목사가 교회를 섬기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것은 오래되고 강력한 통념이다. 아무리 생활고가 심하더라도 목사는 목회에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빈민선교 등 특수한 목회를 하면서 다른 직업을 갖는 경우는 몰라도, 일반적인 목회에서 목사가 돈벌이도 하고 목회도 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 ‘현대적’으로 사고하는 실천신학자들이나 젊은 목사들은 항변한다. 목회만으로는 생계가 불가능하고, 이미 많은 젊은 목사들이 부업으로 생활을 꾸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중직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들은 교회법상으로 불법적인 사람이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두 가지 입장 중에 선택을 강요당한다면, 나는 겸직 혹은 이중직도 나쁠 것이 없지 않느냐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답은 무의미하다. 이중직 허용 논란은 표피적이기 때문이다.

젊은 목사들이 택시운전이나 대리운전에 나서는 것은 미자립교회의 증가 및 목사 과잉 공급과 맞물려 있다. 매년 새로운 목사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갈 곳이 없다. 결국 개척을 하거나 어려운 교회를 맡을 수밖에 없는 그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고, 자녀라도 있을라치면 생활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이야기지만, 한 대형교단에서는 한 해에 800명 정도가 목사 안수를 받는데, 시골, 도시, 선교기관 할 것 없이 억지로 자리를 만들었어도 수용 인원이 600명이 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나머지는 별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교회개척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각 교단들은 경쟁적으로 ‘교회 배가 운동’을 벌이면서 신학생 수를 크게 늘렸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이미 고도 성장기를 지나고 있었고, 그 정책은 결과적으로 갈 데 없는 목사의 양산과 미자립교회 증가를 초래했다.

무슨 경제학적인 사고냐고 할지 모르지만, 목사의 공급을 교회의 수요에 맞추어 조절해야 한다. 목사 배출수를 줄이자면 선교를 포기하라는 거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당연히 선교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 많은 리더들이 선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꼭 ‘목사’여야 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목사가 많아진다고 교회가 꼭 잘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천주교는 최근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이미 여러 해 전에 영세신도수가 5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천주교 사목신부의 수는 2,000명을 넘지 않는다. 한번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게다가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는 주장은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바울은 이방세계에서, 불모지에서 복음을 전했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라면 생활을 해결하면서 선교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천만 성도”를 구가하고 있다. 기독교의 소위 인프라가 짱짱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은 기도하고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전심전력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교인들을 돌보는 목사를 원한다. 생활비를 다른 일로 버는 목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목사라면 은행 대출도 꺼린다는데, 지금이야말로 신학생 수와 목사 수급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깊이 고민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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