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로교 100회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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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 100회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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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0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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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한 목사 /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한국 장로교 제100회 총회가 열린다. 수많은 장로교단들이 모두 다 이번 총회가 100회라고 내세운다. 각기 자기 교단이 1912년에 첫 총회를 치른 한국장로교단의 적통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은 기네스북 기록감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똑같은 교단 이름을 사용하는 교단의 수가 200개는 넘었고, 240개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분화가 계속되어서일까, 아무도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신앙의 눈으로만 아니라, 세속의 눈으로 보아도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부끄러운 분열은 단지 한국인들이 분열의 DNA를 타고나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분열에는 선교사들의 부정적 영향력을 포함한 여러 원인의 상호작용이 있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에는 혼란스럽고 아픈 우리 역사의 흔적도 깊이 새겨져 있다.

한국장로교의 첫 분열은 해방 직후,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의 출범이다. 일제 말기에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해방이 되자, ‘옥중 성도’들은 신사참배 결의를 주도한 세력들의 퇴진을 요구했지만, 주도 세력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예장 고신이 태동했다. 이것은 잔혹한 식민지배의 상흔, 일제 잔재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역사의 비극과 관련되어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분열은 ‘신학적 이유’ 때문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평안도?영남’의 교권 세력과 ‘함경도?호남’의 비교권 세력의 갈등이 작용했다. ‘함경도?호남’은 조선 역사에서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지방이었다. 한국교회 역사 위에 조선 정치권력의 역사가 그 질긴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은 WCC가 ‘용공’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로 분열했다. 이 분열 이면에는 미국의 구호물자 배분 문제로 인한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갈등에 실질적 명분을 제공한 것은 6.25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이다. 이 전쟁과 분단으로 한국사회는 참혹한 학살을 경험했고, 화해가 불가능한 대립을 고착화했다. 그 흔적은 지금도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교단들의 급속한 분열은 적어도, 국가가 주도한 산업화와 맞물려 있다. 1970~80년대는 전국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과거’는 급격히 힘을 잃었다. 옛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은 고루한 것이 되었다. 오래된 골목과 가옥들은 무더기로 헐렸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과거에 중시되었던 가치와 권위는 낡은 가옥들과 함께 ‘철거’되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도시로 흘러든 사람들은 위안을 찾아 교회로 몰려들었다. 많은 교회들이 급성장했다. 힘이 생긴 교회들은 교단과 뜻이 맞지 않으면 몇이 어울려 새 교단을 세우게 되었다. 교단의 권위, 교권의 힘이 그 영향력을 잃었다. 근대화, 산업화, 개발독재의 역기능이 장로교 분열의 사회적 배경의 하나가 된 것이다.

장로교 분열의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 역사의 곡절을 따져본 것은, 올해가 광복 70년, 분단 70년이기 때문이다. 나라든 교회든 모두 나서서, 분단을 극복하고 온전한 광복을 이루자고 합창한다. 그것은 일제강점과, 6.25한국전쟁 및 분단으로 이어진 굴절과 대립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하자는 것이다.

장로교 제100회 총회에 장로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화두로 내건 교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걸었든 아니든, 적어도 이번 총회는 분열을 참회하고, 굴곡진 역사를 청산하여,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분단 극복과 통일을 외치는 교회의 기도에 진정성이 깃들 것이다. 아니 그전에 우리의 신앙이 진정한 신앙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요, 그분의 교회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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