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과 기적의 현상 아라랏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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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과 기적의 현상 아라랏 산
  • 승인 2003.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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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눈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곧 이어 어린이 주먹만한 눈덩이들이 뺨을 때리면서 무섭게 날아왔다.

체감 온도가 급격히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가는 것 같았고 거센 강풍에 떠밀려 몸이 휘청거렸다. 아라랏산의 대부 파라슈트씨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아라랏의 사탄”이 불현듯 찾아온 것이다.

구름이 몰려오면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엎드려 있다가 뒷걸음쳐 내려오라고 했던 셀파의 말은 위기적인 삶의 본능 앞에서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살아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만으로 허겁지겁 밑을 향해 발을 떼어 놓는다는 것이 그만 몸에 중심을 잃고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미 생사의 고삐는 개인적인 제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 창조주 하나님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다.

“주여, 내 영혼을 지금 받으시려고 합니까?” 인간 썰매가 되어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가다 정강이 쪽 다리에 둔탁한 충격이 가해짐과 동시에 죽을 힘을 다해 뻗은 발꿈치는 가까스로 몸을 멈춰 서게 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잠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방에는 온통 눈들로 덮여져 있었고 미끄러져 내릴 때 찢어져 내린 바지 속에는 눈과 피가 한데 엉켜져 선뜩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발을 움직여 보았더니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고 보안용 색안경과 작은 배낭도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실로 하나님의 손이 죽음의 홀이라는 크레바스(crevasse)에서 기적적으로 붙잡아 주신 것이다.

눈 속에 파묻혀 있어서 그런지 강풍과 함께 몰아치던 돌덩이 같은 눈보라와 살인적인 추위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두 셀파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세찬 바람 소리에 막혀 더 이상 멀리 퍼져 나가지를 못하였다.

이제는 혼자 산을 내려가야만 된다고 생각하고 주변에 있는 눈들을 조금씩 걷어 내기 시작했다. 마침 발 밑에 큰 바위가 있어서 그것을 발판으로 조금씩 옆쪽으로 비켜 내려갔다. 얼마 후에 눈보라 섞인 칼 바람이 조금씩 약해지더니 갑자기 눈부신 햇살이 환하게 비춰왔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아라랏산은 본래의 평온한 모습을 드러내었고 산 아래에는 4천여 m의 높은 산봉우리들과 에덴 동산이라고 불리우는 아라스 골짜기가 하얀색 덧칠을 한 풍경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곳에도 두 셀파의 모습은 보이지를 않았다. 혹시 떨어져 죽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계약서에 쌍방간의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쓴 조항이 새삼스럽게 기억 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쓸데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눈을 들어 위를 쳐다보니 저 멀리 높은 빙벽에 두 셀파가 나무에 매미가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찰싹 몸을 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강풍이 몰아쳤을 때에는 서두르지 않고 그것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제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서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필자를 발견하더니 먼저 손을 흔들어 보인 다음 올라갔던 얼음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두 사람은 마치 치열한 전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전우를 반기듯이 양볼을 비벼가면서 필자를 와락 껴안았다. 그들은 내가 시야에서 보이지를 않자 틀림없이 죽은 줄로 알고 매우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우리 일행이 내려오는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포터들은 들어가 있었던 텐트를 얼른 거두어 짐을 꾸렸고 뜨거운 박수로 우리들을 맞이하였다.

필자는 이번 아라랏 등반을 통해 이 세상 그 어떤 보석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적 교훈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첫째는, 모험하는 자만이 고통의 산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모험이 있는 곳에 성취도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의 아라랏 산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험의 연속이었다.

입산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부터 베테랑 등산가도 오를 엄두조차 못 낸다는 만년설의 빙산을, 그것도 영하 40도를 오르 내리는 최고 혹한기에 올랐다는 것은 스스로도 선듯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도전적 모험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둘째로, 정상에 대한 유혹을 과감히 포기하라는 것이다. 강풍이 몰아쳤을 때 순간적으로 느꼈던 것은 좀 무리가 되더라도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을 반드시 밟고야 말겠다는 과욕적인 생각이었다.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십중팔구는 아라랏산의 영원한 냉동 인간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아라랏산은 정상에 오르려다가 실족하여 떨어지는 사람들 대부분이 무리한 욕심을 내었기 때문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셋째로, 고난의 바람과 시련의 눈보라가 칠 때는 그것들이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참고 서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필자는 경험 부족으로 서둘러 하산하다가 하마터면 큰 사고를 당할 뻔하였다. 두 셀파는 강풍이 지나갈 때까지 빙벽에 그대로 붙어 있다가 안전하게 내려왔다. 고난과 시험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참고 기다리는 것임을 아라랏산은 실제적인 경험으로 가르쳐 주었다.

넷째로,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올라갈 때는 위만 쳐다보면서 온 힘을 다 쏟았기 때문에 그런 대로 쉽게 오를 수 있었지만 내려올 때는 긴장이 풀리고 서둘렀기 때문에 미끄러져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를 더 조심하고 신중히 행해야만 할 것이다. 등반 사고는 거의 모두가 내려올 때 일어났었음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아라랏산의 삼일길, 모세에게 미디안 광야가 있었듯이 아라랏산은 노아 방주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필자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도우심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었던 연단과 기적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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