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땅 네팔의 복음화는 순수한 어린이들에게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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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땅 네팔의 복음화는 순수한 어린이들에게 달렸습니다”
  • 이석훈 기자
  • 승인 2015.07.2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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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폐허의 현장 네팔을 가다

백석 임원 및 실사단 네팔 선교지 방문, 지난 13일-17일

차기현 선교사 ‘지진피해아동지원선교센터’ 기공예배 드려

▲ 카투만두에서 차로 7시간 걸어서 2시간 총 9시간만에 도착한 비제따백석교회 헌당예배를 드리고 주민들과 함께 했다.

지난 4월 25일 강도 7.8의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인명(사망자 8,600여명, 부상자 17,000여명)과 재산 등 큰 피해를 입은 네팔 땅은 아직도 복구의 손길이 요원한 상태다. 더욱이 이번 지진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많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5년 전 네팔선교를 시작한 차기현·우명주 선교사가 이들을 사랑으로 품고자 고아원 사역을 본격 시작한 것이다. 즉, 힌두교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네팔에서 어른들을 전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반면 순수한 아이들을 복음화시켜 이들을 네팔복음화의 정병으로 양육한다는 계획이다.

예장 백석총회는 네팔지진 피해지역을 돕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여 약 6천4백여 만원의 성금을 모금했다. 이와 함께 총회는 주관부서인 사회복지국(온재천 총무)과 세계선교위원회(임인기 이사장, 김흥수 총무)와 임원(이주훈 부총회장, 이창신 부서기)들이 현지를 방문하고 피해현장을 돌아보면서 향후 지원방향을 모색하고 돌아왔다.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현지를 돌아본 방문단은 파송 선교사이기도 한 차기현 목사(서울강남노회 파송, 44세)의 안내에 따라 카투만두 시내는 물론 또 다른 피해지역인 고루카 등을 돌아보고, 지진피해 아동을 돌보기 위한 선교센터(고아원 사역)부지를 찾아 기공예배를 드리고 왔다.

 

지진피해지역 복구는 요원

네팔 땅을 처음 밟은 방문단 일행은 비행기에 내리는 순간 네팔의 경제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공항에도 에어컨 시설이 없고 공항을 나와 거리를 돌아보아도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60-70년대를 보는듯했다.

▲ 도착 첫날 돌아본 카투만두 박터풀의 지진피해 .

차기현 선교사의 안내를 받고 처음 방문한 곳은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서도 지진피해가 심했던 벅터풀 도시였다. 불과 일주일전까지만 해도 여진이 계속됐다고 하니, 시내에서 불과 30-40분 거리에 있는 벅터풀에 도착한 순간 마치 지진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건물들은 온전한게 거의 없었다. 그래도 기초가 잘 돼 있는 건물은 완전히 파손되지는 않았으며, 부실한 건물들은 그야말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모습들이 그날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반석위에 지은집’과 ‘모래위에 지은집’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산쪽 마을로 올라가면서 피해의 모습은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마을 언덕에 위치한 큰 신전은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주위 상점들은 지진피해로 인해 대부분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주위의 건물파괴로 찾는 이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에 더 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

건물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 곳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주택이고 상점건물이고 피해를 입은 것도 억울한데 그 복구비용을 건물 주인이 감당해야 한다고 하는 네팔의 현실에 집과 건물을 잃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복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4월에 일어난 피해현장은 지금도 대부분이 그대로의 모습이며, 일부 집들만이 가족들이 나서 잔해를 치우고 새롭게 복구하고 있는 듯했다.

지진피해가 가장 심했던 지역이 힌두사원을 비롯한 우상이 가장 많았던 곳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방문단 일행은 네팔을 향하신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을 직감할 수 있었다.

네팔의 고급 요리라고 하는 염소고기를 맛본 일행은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또 다른 피해지역(고루카)이며 차 선교사가 돌보고 있는 선교지교회(따구곳에 위치한 비제따백석교회)의 헌당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두 대의 짚차에 나눠 타고 길을 나섰다.

 

산골 오지에도 마을과 교회가

5시간 포장도로(일명 고속도로)를 달리고 다시 3시간여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기에 총회에서 사준 승합차(프레지오 12인승)로는 갈 수 없어 사륜지프를 대여했다. 새벽에 카투만두 시내에 위치한 호텔을 나와 한참을 달린 후 도로 옆 식당(일명 휴게소)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또다시 비포장도로 3시간을 포함해 총 8시간을 가서야 차가 멈추었다. 그것도 깊이 파인 도로사정상 멈춘 것이라 걸어서 두시간을 가서야 목적지인 비제따백석교회에 도착했다.

2시간 가까이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몇 개의 마을을 지난 후 만난 곳은 고루카에서도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야말로 산골 오지였다. 이런 곳을 차 선교사는 선교지 교회라는 이류로 한 달에 몇 번씩 버스를 타고 산비탈을 걸어서 방문하고 있었다.

“어찌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헌당예배가 시작되기도 전에 모여든 마을 어린이들과 주민들로 인해 비좁은 예배당은 이미 들어앉을 곳 없이 만원이었다.

15일 오후 3시에 드려진 헌당예배는 그야말로 마을축제였다. 예배순서를 담당한 방문단이 도착하기도 전부터 젬배(북) 하나의 반주에 맞춰 큰 소리로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찬양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헌당예배는 김흥수 목사의 사회로 이창신 목사의 기도와 현지교회 쩔락 청년의 성경봉독에 이어 이주훈 목사가 ‘주의 성전을 사모하는 자의 노래’란 제목으로 설교했으며, 임인기 목사의 권면과 온재천 목사의 축사, 이소르 담임목사의 격려사와 크리스나 현지목사의 감사인사가 있었다.

차기현 선교사의 통역으로 진행된 예배에서 이주훈 목사는 “우리는 육신의 부모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임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산골마을에 교회가 지어진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임을 알고 매일 같이 나와서 기도할 때 이곳이 축복의 마을로 변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선물로 예쁜 티셔츠를 받은 아이들과 주민들은 교회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외지인들을 접하기 힘든 오지마을 주민들은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한국에서 온 일행들을 신기하고 반갑게 대했으며, 사진을 찍을 때도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사택에서 정성껏 준비한 현지 음식을 간단히 먹은 일행은 다시 2시간을 걷고 비포장도로를 포함해 4시간 차를 타고 고루카를 거쳐 포카라로 이동해 밤 12시간 돼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그날은 총 12시간 차를 타고 4시간을 걷는 강행군이었으나 산골 오지에 교회가 건축됐다는 사실에 피로감을 잊을 수 있었다. 더욱이 교회에 아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네팔의 복음화의 청신호임을 느낄 수 있어 색다른 보람으로 여겨졌다.

포카라에서 이튿날 밤을 보내고 새벽에 사랑곳으로 출발해 해돋이와 히말라야 풍경을 보려고 했지만 우기의 궂은 날씨로 인해 새벽잠을 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전날 강행군을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해돋이 보다는 잠의 안식을 주신 것 같았다.

새벽에 못 본 사랑곳을 방문해 해돋이 대신 히말라야 풍경과 잘 알려진 안나푸르나를 보려고 했지만 그 역시 날씨가 좋지 않아 구름에 가려 등산 아닌 등산만 하고 내려왔다. 포카라는 네팔의 유명한 관광도시라고 하지만 지진 영향으로 외부 관광객들의 발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와 동굴로 떨어지는 데이빗 폭포를 돌아보고는 또다시 카투만두로 장거리를 이동했다.

 

계속 개척되는 ‘라이트하우스’

차기현 선교사가 세운 교회의 이름이 ‘라이트하우스처치’ 일명 ‘빛의집교회’이다. 차 선교사는 카투만두 시내를 모교회로 하여 싯따빠일라에 두 번째 교회를 개척해 현지 사역자를 세웠다.

▲ 씻따빠일라교회 사택이 지진으로 전파됐으나 예배중이어서 화를 면했다.

넷째날은 바로 이곳들을 방문했다. 먼저 방문한 곳은 차 선교사와 협력하는 현지인 이소르 목사가 사역하는 비제따교회였다. 힌두 제사장 출신인 이소르 목사(51세)는 형님 건물 3층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지금이 영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한국의 방문단 목회자들은 네팔의 복음화를 위해 무릎을 꿇고 통성으로 기도했다. 이소르 목사는 브라만 계급의 힌두 제사장이었는데 30년 전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인도에서 신학을 한 후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아들은 현재 한국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방문단 일행은 차 선교사가 설립한 두번째 교회인 싯따빠일라 라이트하우스를 방문했다. 이곳 역시 현지인 사역자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이번 지진으로 사택이 전파됐으나 마침 예배시간이어서 바로 옆 건물인 예배당에서 예배드린 가족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주민들 20여명에게 사랑의쌀(25Kg)을 전달해 사랑을 전했다. 이 자리에는 지역의 정치인 2명과 뚜러이(나팔)라고 하는 기독교 잡지사에서 취재를 와서 몇일 후 ‘지진 피해자들에게 구호품 증정’이란 제목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일행들은 오후 첫 번째 교회인 버순다라 라이트하우스를 방문했다. 다른 곳에서 이사한지 불과 몇일 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현지인 예배와 함께 고아들의 공동생활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고아들을 합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현재 고아원이 아닌 사회복지센터로 등록해 사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전임 전도사 1명과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협력전도사 1명, 신학생 1명이 사역하고 있어 차 선교사가 이들의 생활까지 담당하고 있다.

 

아동지원 선교센터 감격의 기공예배

일행들은 드디어 차 선교사가 기도하며 대지를 구입하고 고아원 사역을 시작하게 될 현지에 가서 기공예배를 드렸다. 카투만두 외곽인 비류따르에 위치해 ‘네팔 지진 피해아동 지원 선교센터’라는 이름으로 거행된 기공예배에는 한국의 방문단들과 현지의 목회자, 고아원 아동들이 함께 참석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 차기현 선교사가 돌보고 있는 고아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

현재는 7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2층 규모의 선교센터가 완공되면 더 많은 피해 아동들을 돌볼 계획이다. 선교센터는 그야말로 지진피해 아동들을 돌봄은 물론 네팔을 복음화시키는데 중요한 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말씀을 전한 이주훈 목사는 “주님의 은혜 가운데 복음의 불모지인 네팔에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위한 선교센터가 백석의 이름으로 건축하게 됨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선교센터를 통해 아이들을 복음으로 양육시키는 한편 새로운 복음의 전초기지가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또한 축사를 전한 이창신 목사는 “이곳을 통해 복음을 접하고 성령에 사로잡혀 성인이 되어서도 참신앙인이 되어 네팔을 복음화하는데 큰 일꾼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으며, 임인기 목사와 온재천 목사 역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고자 할 때 8가지 축복을 약속하시고 이루신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영혼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선교사님과 이곳의 주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축복했다.

마지막날 저녁에는 한인식당으로 차 선교사 가족과 경기중앙노회 파송으로 어린이사역을 하고 있는 이명자 선교사 부부, 그리고 백석대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다가 현재는 합동측에서 사역하는 김창근 선교사를 초청해 함께 만찬을 나누며 격려했다.

4박 6일의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직항이 없는 관계로 태국의 방콕공항을 거쳐 무사히 서울의 인천공항에 도착한 한국의 선교방문단 일행은 순박한 얼굴로 인사(‘나마스떼’ 우리말로 ‘안녕하십니까’)에 화답하는 네팔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앞으로의 사역에 주님의 인도하심이 함께 하기를 기도했다.

교회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앞으로 네팔 전역에 울려 퍼지게 될 교회인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저이 마시’(예수 승리)

▲ 이번 방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지진피해아동 지원 선교센터 기공예배를 드린 후 삽을 뜨면서 기공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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