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교, 위기 근본 원인은 선교지 이해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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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교, 위기 근본 원인은 선교지 이해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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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7.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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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표 선교사 / 예장통합세계선교부 동부 아프리카

한국선교의 위기는 선교 시작부터 선교이해의 부족이 가져온 산물로서 선교지 이해의 부족으로 이어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며, 한국선교는 “한국에서 성공한 기독교는 한국교회의 성공이 곧 선교지 교회에서도 성공한다”는 단순논리로 한국식 교회, 한국식 기독교의 형태를 선교지에 심는, ‘한국식 선교’로 지난 30여년을 소비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독특한 ‘우리주의’가 선교이해 당사자 설정에 적잖은 혼란과 혼동의 악순환을 산출해냈다. ‘우리의 것’의 가치를 지키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우리의 것이 선교지의 현지인들을 ‘갑과 을’의 관계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배격되어야 마땅하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들 한국인들끼리만 모이다 보니 선교사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언어습득과 문화이해’의 폭을 스스로 제한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한국선교의 패러다임을 눈여겨보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국선교는 누가 이렇게 영향력을 미쳤는지 모르지만 ‘넓고 쉬운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필자는 늘 질문을 한다.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같은 고향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정’을 나누는 것을 꼭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억지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한국선교사들이 ‘돌파’를 시도할 한국문화라고 한다면 과감하게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우리주의’는 선교지를 경쟁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게 되었다. 선교 시작의 처음에는 자의든 타의든 ‘경쟁적 선교’가 선교의 위기를 자초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한국인의 ‘집단주의’는 결코 하나의 집단으로서의 ‘집단’이 아니라 수 없는 소집단으로 구성되어진 하나의 큰 단위의 집단과 같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왜 한국인들은 집단적이면서도 그렇게 연합, 협력하지 못하는 독립적인가?’에 대한 해답을 가질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소집단으로 구성된 큰 집단 안에서 당연하게 일어나야 할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 그 근본원인이 바로 소집단간의 경쟁적 관계이다.


이런 맥락에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교단들이 가지는 선교 성공주의에 기인한 교단주의의 강화는 앞으로도 그 도를 더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말하면 교단주의 선교에 강한 한국교회가 선교를 ‘개교회주의’로 선교 패러다임을 선회한 것은 선교 이해와 우리주의 안의 소집단의식의 패러다임의 결과라고 본다. 이것은 종국에는 선교적 이해 없이 수행한 선교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세계는 빛의 속도 그 이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선교지도 마찬가지이다. 피선교민들도 우리 선교사들이 현장을 밟았을 때의 피선교민들이 더 이상 아니다. 필자가 가지는 생각은 "목회가 전문성을 요구하듯이, 선교도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한다"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한국선교 지도자들의 ‘선교이해의 패러다임 전환’의 변혁을 기대한다.


선교의 이해의 틀을 바꾸지 않고는 이 시대의 선교를 수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직면한 선교의 위기 극복은 물론이고 선교의 장에서 도태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예측, 결코 경히 여길 수 없는 한국선교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필자가 지적한 한국교회의 선교의 패러다임으로서, 즉 ‘선교 이해의 부족’, ‘우리주의’의 특이한 한국문화, 그리고 지나친 경쟁을 촉발한 한국선교의 ‘성공주의’의 극복은 선교를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임해야한다. 그 대안으로 선교현장 중심의 선교사 계속교육과 현장 진입 전 선교사 교육을 현장 중심의 교육으로의 전환은 새로운 선교시대의 우리 한국선교의 숙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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