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분량 채워질 때 남북통일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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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분량 채워질 때 남북통일도 가능하다”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5.05.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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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광복 70년 맞아 다시 되짚는, 한국교회 통일기도운동의 역사

독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통일 기도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이뤄진 역사적 사건이었다. 1980년대 초 동독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매주 월요일 오후 6시 평화기도회를 열었으며, 통일 기도의 불길은 동독 전역으로 확산됐다. 니콜라이교회 기도운동의 특이점이 있다면, 기도에서 그치지 않고 평화시위로까지 전개됐다는 점이다. 평화를 갈망하는 청년과 그리스도인들은 촛불 기도를 벌이며 비폭력 평화행진에도 동참해,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민주화 시위를 지속했다. 그 가운데 교회는 약자를 보호하고 반체제 인사를 보호하는 민주화의 성지 역할을 했다. 

독일의 시민들은 자유와 통일 운동의 기반을 성서와 교회에서 찾았으며, 교회는 예배를 통해 힘과 의지를 결속시켰다. 그 결과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은 단 한 번의 유혈 사태 없이 분단 45년 만에 통일을 이뤘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독일은 극적인 통일을 이루고 동서 화합의 사회적 기틀을 다져가고 있지만,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남북 정세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들은 분단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를 카이로스의 해로 내다보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 통일기도운동의 역사를 짚어봤다. 

▲ 매주 목요일 저녁 열리는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에서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간절한 부르짖음과 기도가 지속되고 있다. (사진: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제공)

#이데올로기가 기도운동의 최대 걸림돌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는, 세계 선교의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패턴이 ‘기도-부흥-선교’의 깊은 영향성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는 기도를 통해 부흥이 일어나고 부흥을 통해 자연스럽게 선교가 일어나며, 선교를 통해 더 깊은 기도로 들어가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북한 선교에 대한 이해와 필요에 대한 의식이 바로 기도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의 성장 역시 기도에서 시작됐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등이 한국 특유의 기도 문화로 자리 잡을 만큼 한국교회의 통일운동도 기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통일을 위한 기도가 한국교회 개별 단체들의 기도가 운동으로 결집된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6.25전쟁 이후에는 북한 공산당이 가한 적대적인 체험들로 인해 반공주의의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전쟁의 참화를 몸으로 겪은 상흔은 남북 화해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이다. 통일을 위한 기도의 의식은 분단 초기부터 있었지만, 사회 전반에 흐르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는 한국교회에서도 주도적인 정서를 차지했고, 통일에 대한 담론을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는 “한국 정부의 강력한 반공 정책으로 인해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교회 역시 반공이 주류 정서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통일에 대한 담론이나 기도운동도 주춤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교회 통일기도운동이 공식적으로 표면화 된 것은 1974년, 북한 선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씨앗선교회가 김창인 목사(충현교회 원로)에 의해 창립된 것을 기점으로 한다. 씨앗선교회는 북녘 땅에 잃은 영혼, 복음으로 다시 찾자’는 표어를 걸고 1977년 사단법인 북한선교회로 정식 발족했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통일에 대한 담론이 조직적 운동으로 확산되기까지는 한계가 있었다. 

조직적 통일기도운동의 필요성은 1980년대부터 대두되기 시작했지만, 개별 단체들의 기도의 열기가 실제로 조직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한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1997년 선교한국 주관으로 열린 ‘제1회 선교동원가 전략회의’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 회의에서 제기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국교회의 중보기도 사역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조직적인 ‘네트워크’ 형성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헌신된 이들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담론의 확산은 그동안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했던 통일기도에 대한 인식적 변화와 의식이 개방이 뒷받침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통일기도운동의 절정기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북한 기도운동의 조직적 전개는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활발히 진행됐으며,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정점을 이뤘다. 유관지 목사는 “2000년대 전후로 탈북민이 늘어났고, 대북 지원이 활성화되면서 이념적 장벽에서 벗어나 한국교회 안팎으로 통일 선교운동이 대단히 활발해졌다”며 “이 시기를 통일선교운동의 백화제방기라고 칭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만큼 한국의 통일선교운동이 활성화되고, 전문화 된 것이다. 

통일기도운동 영역도 다양화되어 대북 지원, 탈북민, 북한 선교, 인권 문제운동을 중심으로 세분화 되어 일어났다. 특히 국내 선교계를 중심으로 북한의 실상을 ‘기도제목’을 통해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됐으며, 이는 점차 체계적인 기도운동으로 발전했다. 2001년 ‘북한사랑’이라는 격월간지를 통해 북한선교 중보기도운동의 네트워크가 마련됐으며, 그리스도인들을 북한 선교 중보기도자로 세우는 일을 전개했다. 또 모퉁이돌선교회의 ‘카타콤’, 한국오픈도어선교회의 ‘북한월간개발소식’도 매월 발행돼 지속적, 전략적, 집중적 중보기도를 도왔다. 

이중에서도 쥬빌리구국기도회와 북한선교중보기도 네트워크는 2000년대 한국교회 통일기도운동의 두 축을 이뤘다. 북한선교중보기도 네트워크(PN4N:The Prayer Network for North Korea Missions) 평화 통일과 북한 복음화를 위한 국내 외 기도 사역자를 연결하는 강력한 기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활발한 기도운동을 전개했다. 

2007년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열렸던 쥬빌리 코리아는 여러 단체들이 연합해서 기도회를 가졌다. 그 이후 30여개 단체들이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를 시작하고 발전해 현재 53개 단체들이 연합하고 있으며, 국내 11개, 해외 11개 지역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2000년대 후반에 와서는 에스더기도운동을 중심으로 통일 기도운동의 네트워크가 활발히 형성됐다. 에스더기도운동 2007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열린 에스더 단식 성회는 ‘에스더 금요철야기도회’로 이어졌으며, 2009년 1월 ‘북한구원 금식성회 (JESUS ARMY)’를 기점으로 전국의 교회, 신학교, 캠퍼스와 교포 한인교회에서 북한구원 월요기도운동이 시작됐다. 2010년 10월 31일 첫 모임을 시작으로 매주 월요일 저녁8시 서울역 광장을 비롯한 각 도시의 광장에서 북한구원과 통일한국을 위한 통일광장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미국의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독특한 기도운동의 흐름도 있다. 2004년, 미주한인교회연합(KCC)은 니콜라이교회의 월요기도회를 모티브로 기도모임을 시작했으며, 이 기도모임이 기폭제가 되어 미국 50개 주의 한인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북한 선교에 마음을 모아 조직적인 기도운동을 시작했다. 이 KCC운동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통곡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2006년 1차 통곡기도회가 시작됐으며, 한국의 9개 도시, 미국의 22개 도시에서 열리면서 전 세계 한반도 통일 기도운동으로 확산됐다. 올해 연말까지 국내외 100개 교회 등에서 ‘통곡기도회’를 열고, 10만 통일 선교사 파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단 70년, 카이로스의 해 놓치지 말아야

특히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 한국교회 교단 차원의 기도운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황용대 목사, 기장)는 지난해 총회에서 ‘평화통일 월요기도회’를 공식 결의하며, 교단 소속 교회들이 매주 평화통일 기도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시간에 각 장소에서 기도회를 열고,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며 통일이 이뤄질 때까지 정기적으로 기도회를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총회장:정영택 목사)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지난 2013년 7월 27일부터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 8월 15일까지를 ‘민족의 치유와 화해, 평화통일을 위한 3년’으로 정하고 이를 위한 실천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가 기도를 통해 이뤄진 것처럼 우리의 기도의 분량이 채워질 때 통일도 가능하다는 인식에서 통일기도운동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신학자들은 일찍이 국내의 통일운동이 지금처럼 활발한 양상을 띤 시기도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카이로스의 때가 되기를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교회는 민족의 온전한 해방과 통일을 위한 기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허문영 대표(통일연구원)는 “‘해방’은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반응, 하나님의 명령과 그리고 인간의 순종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해방은 출애굽을 통한 노예생활의 해방과 70년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의 해방,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우주적 ‘해방’이 있다”며 “이는 모든 해방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또 그는 “대한민국은 자유에 기초해 시작된 나라이며, 북한은 평등의 가치로 시작됐다. 자유와 평등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관계지만, 이 둘을 엮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아가페의 ‘사랑’과 기도”라며,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한반도의 통일을 이뤄주실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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