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울의 물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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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울의 물이 귀하다
  • 승인 2003.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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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골짜기는 서울과 멀리 경상도, 전라도, 심지어 제주도에서까지 하루 평균 서너 곳 이상의 교회와 목회자들이 구경을 오고 벤치마킹을 하겠다고 들리는 꽤 소문이 난 유명한 교회가 되었다. 사실 우리의 현실은 변함없이 여기에 머물러 있는데 언론이란 마력이 우리를 끌고 왔다.

뭐 대단한 게 있는 줄 알고 먼길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뭔가 보여 줄 게 마땅히 없어서 사실 미안함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어느새 세상의 경쟁논리가 스며들어 와 큰 교회, 유명한 목회자, 부유하고 많이 배운 교인을 자랑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목회자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숫자, 양적인 것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무엇을 해도 큰 것, 많은 것, 높은 것, 좋은 것을 하겠단다. 꿈이라도 한번 야무지게 꾸고 싶다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야 있겠냐만 너무 양적인 것에 얽매어 있는 것 같아 참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한때 부산에서 서울로 4년을 금요 철야기도회에 다녔던 대단한 열심쟁이였다. 이유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성령이 충만하고 조용기목사가 능력이 있다고 해서 나도 한번 받아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4년을 다니면서 내린 결론은 ‘나는 조용기목사보다 조금 낫다. 키도 내가 더 크고, 인물도 내가 더 낫고, 머리도 내가 더 좋다’는 것이다.

이런 해괴망칙하고 웃기는 결론을 내린 나는 모든 책과 방에다 ‘오늘은 한국을! 내일은 세계를!’이라는 꽤 거창한 표어를 써 붙여놓고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세계를 한번 뒤흔들어야지 이 좁은 바닥에서 아웅다웅하면서 시시하게 놀면 되겠느냐? 한번 멋지고 굵직하게 살아야지’라는 마음을 먹었었다.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오늘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내가 그렇게 변화시키겠다고 꿈꾸고 몸부림치던 한국과 세계가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더 악하게 더 살벌하게 변했을 뿐이다.

결국 나는 나 자신도 변화시킬 수 없는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인 것을 지금 목회를 하고 있는 이 산골 이 절망의 골짜기에서 개척의 무딘 삽을 들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전전긍긍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는 아름답고 영롱한 꿈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삶에 지치고 피곤한 한 영혼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쉼과 회복 그리고 행복을 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작은 것이 부분을 이루고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된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개울이 되고, 개울이 모여서 시내가 되고, 시내가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작은 물방울들이 없으면 큰 강도 바다도 없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작은 것을 무시하고 작은 것을 등한히 여기지만 사실은 작은 것이 귀하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 오고 가는 작은 말 한마디에 우리는 감격하고 감동한다. 부부와 이웃 사이에서 오고 가는 작은 말 한마디에 큰 행복을 느낀다.

사실 나는 이 곳으로 들어올 때 이미 수백, 수천 명이 모이는 대형 교회나 숫자에 대해서는 미련을 완전히 접었다. 아니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만약 수백, 수천 명의 큰 교회를 생각했더라면 나는 결코 이곳으로 들어오지 아니했을 것이다. 그 때 나는 ‘만약 하나님이 나에게 한 영혼이라도 허락하신다면 나는 그 한 영혼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초기 사역자의 결연한 마음을 꽁꽁 동여매고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5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순수하고 초롱초롱한 마음이 많이 흐려지고 있는 것 같아 몹시 두렵고 떨린다. 어쩌든지 처음 그 순수를 잃지 말아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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