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千里馬)를 얻으려면
상태바
천리마(千里馬)를 얻으려면
  • 운영자
  • 승인 2015.02.11 11: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상기 목사 (예수로교회)

구정 세밑에 따뜻한 덕담이 오가는 연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녹록치 않다. 일전 한 대학생이 “청년실신”이란 말을 아시냐고 했다. 청년·실업자·신용불량자의 준말이란다. 최악의 구직난에 직면한 청춘들의 자조 어린 아우성이다.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자식들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 독백하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떠오른다. 우리 모두가 근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헤쳐 온 또 다른 덕수이거나 그의 아들·딸이 아닌가. 현실이 고달프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마다 않는 진취적 자세가 절실하다.


금번 아시안 컵 축구 결승전에서 한국과 호주의 경기가 끝난 후,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의 문제점과 관련하여 대다수 선수들이 축구를 배우지만, 학교에서는 승리하는 법을 가르칠 뿐 축구를 즐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지적한바 있다. 우리 교육현장의 허점이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논어 옹야(雍也)편)


일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한국 엄마들은 ‘지지 마라’고 가르친다. 인간 도리를 지키는 삶에 박수를 쳐주지 않고, 수능점수만 높으면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행동까지도 합리화해준다. 요즘 증폭되는 사회의 각종 사건과 비리의 저변에는 우리의 구조적인 교육의 문제점이 은폐되어 있다.
옛날에 어떤 왕이 일천 금을 주고서라도 하루에 천리(400㎞)를 달릴 수 있는 천리마를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 천리마를 구하지 못했다. 말단 환관(宦官)이 자기에게 임무를 맡겨주면 반드시 천리마를 구해 오겠다고 나섰다. 왕은 환관에게 천금을 내줬다. 환관은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닌 끝에 천리마를 발견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말은 이미 죽어 있었다. 환관은 죽은 천리마를 무려 500금을 주고 샀다. 왕궁으로 돌아와 보고하자 왕은 격노했다. 환관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전하께서는 죽은 천리마를 500금을 주고 사셨습니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천리마라면 그 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런 말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소문이 날 것입니다. 이제 곧 천리마를 팔겠다는 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환관의 말은 적중했다. 왕은 1년이 지나기 전에 천리마를 세 마리나 얻을 수 있었다. 천리마를 얻으려면 파격적이 투자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름지기 이제 한국교회는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한다. 영국의 웰링턴 장군은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의 승리는 자신의 모교인 이튼스쿨(Eaton College)의 교정에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했다. 학교 교육의 목표는 훌륭한 인재양성에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준다.(John Locke-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 영적전쟁의 승리는 강단의 무릎에서 이루어진다. 성공보다 중요하건 성품이요 성과보다 중요한건 성화이다. 신앙생활은 말과 생각이 아니라 인격의 변화요 삶의 성화에 있다.(E. 에리슨) 모세가 성질한번 내서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게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지도자의 덕목은 언제나 거룩이어야 한다는 방점이다.


믿음의 부도는 99%의 순종이 아니라 1%의 불순종 때문이다. 가장 치열한 영적전쟁터의 최전방은 바로 내안에 일어나는 자신과의 거룩한 전투다. 사도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했다.(빌4:12) 인간변화의 핵심은 채움이 아닌 비움이다. 푸시킨이 노래했듯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주 안에 기쁨과 감사와 기도가 누림이 되게 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부역을 원치 않으신다. 십자가의 공로로 행복한 누림을 기뻐하신다. 성경은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고 보증하신다.(사53:5) 얼음장 밑으로 봄을 준비하는 개울물은 쉼 없이 흐르고 있다. 희망의 처소는 가파른 삶이다. 말만하지 말고 무릎을 꿇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