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맨발로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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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맨발로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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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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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독교서회 사장 / 서진한, 목사

혹시 신발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는가? 신발을 말하면, 곧바로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는 한 사람의 발에만 맞는 신기한 신발이었다. 유리 구두는 신데렐라의 신분을 바꾸어놓았다. 서양에는 하늘을 나는 마법의 신발 이야기도 있다. 그 신발은 평범한 인간에게 놀라운 힘을 부여한다. 옛사람들은 신발에 대해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신발은 너무나 익숙하고 때로는 하찮은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 신발은 그렇게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이전 시대에 신발은 한마디로 인류문명의 상징이자, 인간이라는 존재의 상징이었다.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인간은 신발을 통해 자연과 거리를 두었고, 자연을 지배했다. 발은 자연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신체부위다. 맨발로 뜨거운 모래사막을 걷거나, 툰드라의 언 땅을 걷는 일은 몹시 고통스럽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절감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발은 자연 앞에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신발을 신으면서, 인류는 자신의 발과 거친 대지 사이에 신발창 두께만큼의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 거리 때문에 차가운 땅이든 뜨거운 사막이든 가리지 않고 ‘함부로’ 자연을 밟고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신발은 ‘자연을 밟고 선 인간’의 상징이 되었다.

자연에 대한 힘과 권위의 상징은 자연스레 인간사회에서 권위와 신분의 상징으로 이어졌다. 로마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의 신발(샌들)을 신도록 법으로 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아주 이른 시기부터 신발을 사용했다. 기원전 14세기 투탕카멘 왕의 샌들이 발견되었는데, 금과 구슬로 장식된 화려한 신발이다. 파라오의 신발 바닥에는 굴복시켜야 할 원수들의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원수를 밟고 다니는 것이다. 신발은 힘과 권위로 자연이든 사람이든 굴복시키는 어떤 상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집트에서는 노예는 신발을 사용할 수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거꾸로 하면 사람만이 신발을 신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자연 위에 우뚝 선 인간! 권위의 상징! 신발!

그런 이유로,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했다. 신발을 벗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다. 높은 분 앞에서 신발을 벗었던 사람들은 최고로 높은 분, 곧 거룩한 분 앞에서도 신발을 벗고 엎드렸다. 무슬림들은 지금도 신발을 벗고 엎드려 기도한다. 신발이란 내겐 권위가 될 수 있지만, 높은 분 앞에서는 내 존재의 부족함과 정결치 못함을 드러내는 물건이 된다. 온 땅을 밟고 다닌 불결한 물건이다. 그래서 벗는다.

이 전통은 구약성경에서 시작된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도 타지 않는 것을 보고 놀라 가까이 가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신발을 벗어라.’ 모세는 두려움으로 신발을 벗었다.

신앙이라는 것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라면, 신앙이란 곧 신발을 벗고 맨발로 서는 것이다. 내 부와 권위, 내 확신과 명예, 내 삶의 집착과 오욕을 벗고 맨발로, 맨 사람으로 서는 것이다. 모든 인간적 보호막을 벗고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서는 것이다. 그분 앞에 허물과 상처투성이 존재로 서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언제나 ‘…버리고’가 전제되어 있다. 그분을 따르는 길은 재산, 안정, 신분, 관계를 버리고 따라 나서는 길이다. 그 길은 신발을 벗고 가는 길이다. 골고다로 형틀을 매고 채찍을 맞으며 가신 그분의 발도 분명 맨발이었을 것이다.

새해에는 한국교회가,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힘과 권위와 위세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 맨발로 서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교회에 쏟아지는 비판과 비난 위를  맨발로 지나간다면, 한국교회의 추락은 멈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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