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교단의 역사(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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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교단의 역사(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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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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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백석전진대회서 ‘개혁주의생명신학’ 선언
▲ 조병하 교수

장로교의 분열을 총회결의와 연결시킬 때 1952년 9월에 고려파(신사참배문제), 1953년 6월 기독교장로회(조선신학교문제), 1959-60년에 걸쳐 통합과 합동(에큐메니칼운동문제)의 분열 등 세 차례의 큰 분열이 있었다. 사실 한국장로교회의 다수교단 핵분열은 1978년 총회 이후 분열의 분위기를 보이다가 1979년 대구동부교회에서 있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제64회 총회에서 주류와 비주류로 분리되면서 부터이다. 1980년 말에는 비주류측이 방배측과 종암측으로 분열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군소 장로교단들을 형성했다.


1976년 11월 1일 대한복음신학교, 1978년 9월 복음총회가 구성되어 1979년 말 일시적으로 비주류에 합류하였다가 1980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비주류)를 나오게 되면서 복음총회측은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되면서 진리측이라 칭하게 됐다. 그리고 대한복음신학교도 대한예수교장로회(진리) 직영 총회신학교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1980년 5월 허광재를 제2대 총회장에, 1981년 초 이상열을 제3대 총회장으로, 같은 해 9월 총회에서 최순직을 제4대 총회장으로 세워 교단이 발전하게 되면서 교단이 제모습을 갖추면서 놀랍게 성장해 갔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정부의 무인가 신학교정비가 박대통령 시해 후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면서 사회정화차원에서 강력히 시행됐다. 정부는 300개 교회 이상의 교단에 하나의 신학교만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1980년부터 1981년 사이에 110개의 신학교가 폐교되었음을 중앙일보가 후에 보도했다.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진리)의 총회신학교는 당시 교단 총무이었던 박영화의 노력으로 정부당국이 요구하는 교회수를 채울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비주류측이 방배, 종암, 진리 측으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수의 교회들이 이중 삼중으로 이름을 두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1981년 12월 29일 연합측과 통합하게 되면서 진리-연합이 1982년 12월 27일부터 합동정통으로 칭하게 됐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발전하여 1982년 9월 총회의 ‘총회촬요’에는 14개 노회, 330교회의 통계가 나타난다.
그리고 교단이나 총회신학교 역시 당시 역사적인 환경 속에서 입었던 상처들을 1983년 2월 24일 방배3동으로 5층의 붉은 벽돌건물을 지어 이주해 오면서 치료와 함께 놀라운 발전을 가져오게 됐다. 한편 1981년 12월 최순직이 총회장 재직시 대신측 비주류와 통합을 시도했었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통합을 시도해 왔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한편 1978년 9월 복음총회 설립 때 선언했던 교단선언문은 1989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총회에서 새로운 교단선언문이 나올 때까지 사용했다.


설립자가 대한신학교를 졸업했고, 1980년까지 김준삼이 대한신학교의 교수와 대신측 총회장직을 수행했고 같은 해 9월에, 그리고 1970년대 초 당시 성장하던 대신교단을 견고하게 세웠고 대한신학교를 튼튼하게 만들었던 최순직이 1981년 3월에 설립자의 초청으로 총회신학교에 부임했다.(그는 1975년 8월 1일 대한신학교 사임, 재미중이었다.) 그가 설립자와 김준삼과 더불어 신학교와 합동정통교단을 견고하게 세우는데 기여했으나, 합동정통교단이 앞서 살핀바 대로 대신측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고 성장해 왔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놀랍게 성장해 오던 신학교는 오늘날 백석대학교(신학대학원)를 이루었고, 그간 수차에 걸쳐 교단 정체성 확립을 시도해 왔던바 2009년에는 교단정체성확립 차원에서 교단명칭을 합동정통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으로 바꾸게 되었다. 또한 총회 고유회기를 사용하기로 결의하였고, 여성목사 안수 건이 허용되었다. 그 밖에도 중요한 안건들이 처리됐다. 그와 더불어 2011년부터는 백석총회 회기를 제34회로 표기하게 됐다.


한편 2010년 5월 21일에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총회와 백석학원이 백석전진대회를 가져 “개혁주의생명신학 선언문”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개혁주의신학을 계승하는 신앙운동, 신학회복운동, 회개용서운동, 영적생명운동, 하나님 나라운동, 나눔운동, 기도성령운동으로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실천할 것을 결의했다.
숨 가쁘게 성장해온 백석은 오늘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라는 말씀과 한국교회의 숙원인 교회일치의 역할을 주도하여 실현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위해 백석은 교단통합 구현에 힘쓰고 있다. 2013년 9월 제36회 총회에서는 개혁총회와 통합했고, 2014년 9월 총회부터는 양대 총회의 결의에 따라 백석-대신이 통합을 진행해 가고 있다. 양대 총회의 결의에 따라 12월 16일 ‘한 교단’으로 새 출발을 선언했다. 지난 간 2년에 걸쳐 두 차례의 교단통합을 위해 통합총회장으로 장종현목사가 추대되어 통합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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