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울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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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울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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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0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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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목사 / 의왕중앙교회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겉옷을 바닥에 깔며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호산나 찬송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예루살렘 시가지와 성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감람산 기슭에 이르셨다. 제자들과 아이들의 찬양과 환호하는 중에 예수님의 얼굴에는 비통함이 서리시더니 이윽고 우신다.

이 광경에 대하여 누가복음 19:41에서 ‘우시고’라고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 단어의 의미를 살려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간장이 끊어지듯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셨다.

어린아이들과 제자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왜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을까?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대적하는 예루살렘과 그 백성들의 처절한 종말을 보고, 아셨기 때문이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과의 원수 관계가 청산되고, 평화의 관계로 들어가게 된다.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평화의 길은 칼이 아니라 사랑으로 성취되는 평화다.

예루살렘은 살렘의 터(기초)라는 뜻으로 ‘평화의 터 또는 기초’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제시한 평화의 길이신 예수님을 배척한 사망의 도성이었다. 결국 이 같은 완고함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심판을 자초하고 말 것을 주님은 내다보시고 눈물 흘리신 것이다.

이 예수님의 눈물의 의미를 우리에게도,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가 참으로 평화를 구가하는 나라가 되려면 먼저 지도자로부터 온 국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경배하며 평화의 왕으로 모셔야 한다.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진정한 평화의 길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회개와 믿음과 사랑의 길로 열리는 평화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예루살렘의 교권을 가졌던 당시의 사람들처럼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주님이 흘리신 눈물을 우리교회를 향하여, 이 민족을 향하여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평화에 관한 일…네 눈에 숨겨졌다’고 절망을 단적으로 표현하신다. 이들에게 희망이 없어져 버렸음으로 인한 탄식과 아픔을 가차 없이 들어내심이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만 예루살렘과 그 거민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시기도 하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

이 두렵고 처절한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 성 예루살렘이 마냥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보였겠지만 구세주 예수님의 눈에는 기회를 놓쳐버린 그 성이 너무나 안타깝고 비참하게 보였기에 우신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 간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은 우리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를 요나의 회개의 외침을 듣고 왕으로부터 모든 거민이 반응했던 니느웨성처럼 소중히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를 복음화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맘몬과 교만과 영적 윤리적 타락으로 놓치고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 회개의 기회, 회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눈물로써 기도해야 할 때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고, 우리의 회개를 외쳐야 한다. 이것은 경고를 듣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선지자적인 사명인 동시에 제사장적인 의무이기도 하다.

지금 성안은 유월절을 맞아 원근각처에서 몰려든 인파로 마치 죽었던 도시가 다시 살아난 듯 성시(成市)를 이루고 있다. 그들 가운데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고 정신 차린 자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사실로 인하여 눈물로 탄식하신다.

예수님이 하신 예언은 정확하게 40년 후에 사실이 되었다. 성경에 우리나라와 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적인 예언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주님께서 예루살렘 멸망과 세상 종말의 두 사건을 동일하게 다루셨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주님은 주후 70년에 발생한 예루살렘 멸망 사건과 2천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는 세계 종말은 하나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비록 그 사이에 수천 년이라는 시간의 골짜기가 있을 지라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예루살렘 멸망의 예언이 액면 그대로 성취되었다면 남아 있는 큰 사건, 즉 세계종말도 확실하게 성취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울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형제를 위해, 이웃을 위해, 한국교회와 나라를 위해, 울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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