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생명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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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생명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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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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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

하나님은 다섯 번째 재앙을 내리실 때 이스라엘의 가축과 이집트의 가축을 구별하신다(출 9:4). 이스라엘의 가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복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재앙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파라오의 백성을 구별하셨다(출 8:23). 이제 하나님은 이집트의 가축에게만 돌림병이 돌도록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가축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그분의 소유물임을 선포하신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보내지 않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과 자신의 백성을 구별하지 않고자 했다(출 9:2). 하나님은 파라오의 소중한 소유물인 가축들을 병들어 죽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소유물을 탐내는 파라오의 욕심과 오만을 처벌하셨다.

이스라엘의 가축들이 돌림병에 걸리지 않은 이유는 그 가축들 자체에 있지 않았다. 동일한 이집트의 물과 풀을 마시고 먹고 지내는 가축들이지만, 그 가축들의 운명은 그들이 누구의 소유물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동일한 비를 내려주신다. 때때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풍요와 기쁨을 주시기도 하고 동일한 재난과 어려움을 주시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하는 사람에게 그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 모든 것은 합력하여 악이 된다. 그 모든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는 계기가 된다. 이집트 백성이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주신 선물인 가축들을 파라오가 주는 선물로 잘못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가축들이 돌림병으로 죽게 하심으로써 그 생각을 심판하신다.

이집트 사람들은 많은 종류의 가축들을 신성시하여 그 가축들을 죽이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동물을 희생물로 드리는 제사를 드릴 수 없었다. 그들이 그 일을 미워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돌로 칠 것이기 때문이다(출 8:26).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집트 가축들이 질병에 걸려 죽게 하심으로써 그 가축들이 신성한 존재가 아님을 선포하신다. 동시에 그 가축들이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려질 수 있는 피조물에 불과함을 선포하신다. 그 결과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의 가축들이 신성한 존재라는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도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 먹되 …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출 12:5-10)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수 있었다. 이집트 백성도 그들이 신으로 여겼던 어린 양이 죽어나가는 데도 더 이상 반발할 수 없었다.

파라오는 자기 백성의 가축이 모두 죽었는데도 하나님 앞에 항복하지 않는다. 그는 고센 지역에 있는 이스라엘의 가축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출 9:7).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출 9:4)는 말씀을 모세를 통해 파라오에게 이미 주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소유물을 앗아가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파라오와 달리 곧바로 하나님께 항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성취하셨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앞에서 정말 그러한지 끝까지 확인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드디어 파라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의 가축들이 하나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출 9:7).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굳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내어보내지 않았다. 파라오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의 소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신다는 사실 앞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소유물임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소유물이 사라졌기에 아직 보존되어 있는 소유물을 확보하고자 하는 욕심이 그에게 더 생겼을 수 있다. 그의 관심은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는데 있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자신의 욕심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파라오처럼 진실을 확인하고 깨달아도 우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쁜 성향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야 1:15)

파라오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죽음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가버나움에 살았던 왕의 신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을 때 갈릴리 가나에 계신 예수님께 와서 병을 고쳐달라고 구했다. 예수님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하실 때 그는 그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보고 온 가족과 함께 예수님을 영접했다(요 4:46-54).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해 갈릴리에서 두 번째 표적을 행하셨다.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이다(요 4:48). 파라오는 다섯 번째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를 보았음에도 여전히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생명이 있고 그분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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