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사람은 무엇을 해야 되는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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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사람은 무엇을 해야 되는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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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0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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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은 그가 해야 할 새로운 임무 때문에 미지의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부모가 하던 것처럼 살아왔다.

비룡산 소생언에서 6명의 소년들이 꿈꾸던 때로부터 27년이 지나갔다. 돈을 모아서 가난을 탈출하겠다고 꿈을 꾸던 이지원은 시온미래산업을 설립한 후 사업가로 성공했다. 이승룡은 ‘참사랑실천회’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해 많은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선린은 그의 아버지가 비룡산에서 소생언을 가꾸던 것처럼 선화리에에 제2의 소생언을 가꾸고 있었다. 소년들이 원하던 꿈은 하나 둘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다가스카행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들 중 중국인, 일본인 몇 명이 있었고 한국 사람으로는 선린이 혼자였다.

선린의 눈에 ‘사람과 사건(People and Event)’이라는 기사가 들어왔다. 미셀 제이 하워드(Michelle J. Hoaward)란 이름 앞에는 항상 ‘최초(First)’라는 수식어가 장식되었다. 미국 최초 흑인 여성 해군사관학교 졸업, 최초의 러시모어 군함 여성 함장, 미 해군 238년 역사상 최초 여성 4성 장군, 제2원정타격단(ESG2) 사령관으로 2009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미국의 컨테이너선 ‘머스크엘라베마’의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성공한 일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녀가 살아있는 전설의 주인공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은 ‘목표를 갖고 도전하면 이루어진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린은 자신의 이름에는 아무런 수식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린은 읽던 신문을 접고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지막으로 설희가 그에게 한 말을 곱씹었다.

“오빠, 꼭 돌아와야 해요.”

선린은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소생언에서 설희와 함께 있었다. 선린은 아직도 그의 몸에서 설희의 체취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선린은 그 순간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멎은 것 같았던 순간, 그 짧은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선린은 그 순간 속에 있는 듯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설희는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설희는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말해 봐.”
“최고로 좋은 선물을 받고 싶어요.”
“최고로 좋은 선물? 다이아? 사파이어?”
“그보다 더 좋은 것.”

선린은 설희가 원하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일지 생각하였다. 한 동안 서로 간에 침묵이 흘러갔다. 때론 말보다도 침묵이 모든 것을 더 잘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설희가 침묵을 깼다.

“오빠, 내가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순간마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아요?”
“어떤 생각을 했는데?”
“‘이게 내 삶의 마지막일까?’란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산다는 것은 순간, 순간 마지막을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설희, 사람들은 10년을 살아도 100년을 사는 것처럼,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몰라요?”
“사람들의 영원히 살 것 같은 욕심이 재앙을 불러일으키지요.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재물, 더 많은 그 무엇을 원해요.”
“요점을 말해 봐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사람이 진실해져요.”

선린은 설희가 그에게 말할 때 또 다른 설희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과거 철없는 어린아이로만 생각하던 그녀가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보였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역사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자연도 변한다. 신까지도 변하는가?”

이런 생각들이 선린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설희가 선린을 향해 말했다.

“오빠,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선린은 스스로 지혜롭게 살려고 노력하면서도 설희의 당돌한 질문에 어떤 답을 말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선린은 ‘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Christ)’란 영화의 한 장면을 그의 머리에 떠올리면서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것은 가장 소중한 생명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래요, 마지막 순간 사람들은 그의 생명을 주고 떠나지요. 오빠는 내게 무엇을 원하세요?”

선린은 설희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고 싶은 말들은 저축을 하듯이 그의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언젠가는 다 말할 날을 기다리면서.

선린은 당장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린은 생각뿐 말로 할 수 없었다.

“오빠, 나라와 나라, 사람과 사람이 화평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갈라 놓는 경계선이란 것이 놓여있기 때문인 것 알아요?”

선린은 설희 앞에서 점점 더 바보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설희야 이제 그만하자.”
“이제 그 경계선을 허물어야 해요.”

백설희는 진선린과의 사이에 있는 모든 경계선을 허물고 싶었다. 설희는 선린이 해외로 떠난다는 것을 막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같이 동행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와 마지막 순간이 아닐까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낌없이 내어 주고 싶었다. 선린과 설희 사이에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게 되었다.

“설희, 내가 없는 동안 이것을 맡아줘요.”

설희는 선린이 건네는 것을 살펴보았다. 대봉투 안에는 선린이 작성한 혼인신고서가 들어 있었다. 또 다른 서류는 선린이 그의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상속재산 목록과 권리증이 들어 있었다.

“왜 이런 것을 제게 맡겨요?”
“우리가 하나인 것을 잊었어요?”
“오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나요?”

선린은 소유한 재산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소생언을 자신의 것이 아닌 영농법인으로 만들었다. 이지원이 시온미래산업의 그의 소유 주식과 그가 투자한 시온광학의 주식 절반을 진선린에게 양도한 사실이 있으나 선린은 한 번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선린은 그의 아버지가 공주에 사는 양선용 씨에게 보관했던 상속 재산을 물려받은 후에야 자신이 가난뱅이가 아닌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가난과 실패와 좌절을 수없이 체험한 후 그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선린은 그와 설희 앞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추측할 수 없었다. 그는 ‘신의 수(The Divine Move)는 사람에게 감추어지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선린이 탄 항공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면서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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