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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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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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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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하나님 백성을 괴롭히는 모든 시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는다.
▲ 이경직 교수

이집트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도 파라오의 철권통치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들은 파라오의 강압 아래 신음하면서도 그러한 방식에 익숙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치유하시고자 하셨다. 그 치유는 모세로부터 시작되었다.

모세는 파라오가 도리깨와 지팡이로 백성들을 통치한 것처럼 이집트 사람이 모세의 동족 히브리 사람을 도리깨와 지팡이로 치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였다(출 2:11). 그는 주변에 다른 이집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 이집트 사람을 죽여 모래 속에 감추었다(출 2:12).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의 원칙을 따랐다. 그 이집트 사람의 잘못된 통치방식을 막기 위해 모세 또한 그런 방식을 따른 셈이다. 악을 막다가 자신도 모르게 악을 닮게 된 셈이다.

그러나 모세의 해결방식은 효과가 없었다. 그 다음날 모세가 히브리 사람들끼리 다투는 것을 보았다. 모세는 잘못한 사람이 이집트 사람들의 해결방식에 따라 동포를 치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잘못을 꾸짖었다(출 2:13). 그 사람은 모세가 그 전날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처럼 그도 죽이려 하느냐고 물었다(출 2:14). 그가 생각하기에 모세는 히브리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출 2:14). 이는 히브리 사람들을 다스리던 파라오만이 그들을 도리깨와 지팡이로 침으로써 통치할 수 있다고 그 히브리 사람이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집트 사람을 죽였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도리어 그는 피지배자 히브리 사람을 무력으로 다스린 이집트 사람을 죽인 일 때문에 일종의 반역죄를 저지른 셈이 되었다. 그 반역죄를 폭로한 사람은 모세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히브리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모세가 히브리 사람을 치던 이집트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자신도 죽일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행동을 했다. 모세의 해결방식은 부작용을 낳은 셈이다. 악이 악을 낳는 악순환이 일어난 셈이다.

이집트 왕 파라오는 모세의 반역행위에 대해 알고서 모세를 죽이기 위해 그를 찾았다(출 2:15). 모세가 히브리 사람을 위해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처럼, 파라오도 이집트 사람을 위해 히브리 사람 모세를 죽이고자 한 것이다. 이는 파라오가 오랜 동안 유지해왔고 모세와 히브리 사람들에게 감염시킨 통치 방식이었다.

모세는 이러한 문제해결방식으로부터 치유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미디안 땅으로 떠나게 하셨다. 모세는 파라오의 얼굴을 피하여 이집트를 떠나 미디안으로 가면서 많은 후회를 했을 것이다. 그가 미디안 땅 우물곁에 앉아 있을 때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했다(출 2:16). 목자들이 와서 그녀들을 쫓았을 때 모세가 그녀들을 도와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출 2:17). 그는 그녀들을 괴롭히는 목자들을 죽이지 않았다. 그는 필요 이상의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들을 목자들의 괴롭힘에서 건져내는 일에만 주력했다. 그리고 그녀들을 위해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다(출 2:19). 이를 통해 그 동안 목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왔던 그녀들의 괴로움을 덜어주었다.

그 결과 그는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로부터 음식 대접을 받았다. 그는 르우엘과 함께 살고 싶어했으며, 그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얻고 아들까지 낳았다(출 2:20-22). 그가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은 까닭은 그가 이방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데 있다. 이는 그가 더 이상 이집트식 삶의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모세가 도리깨와 지팡이로 상대방을 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했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남을 뜻할 수도 있다.

이집트식 통치 방식에서 벗어난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아내를 얻고 아들을 얻어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직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하는 나그네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집트가 그가 평생 살아야 하는 곳이 아니었듯이 미디안도 그가 평생 살아야 곳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이 그에게는 있었다.

이에 반해 모든 일을 무력으로만 해결하고자 했던 이집트 왕 파라오는 몇 해 지나지 못해 죽고 말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파라오가 부과한 고된 노동 때문에 괴로워서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셨다(출 2:23-25).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고자 했던 파라오의 시도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개입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하나님 백성을 괴롭히는 모든 시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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