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정교회 그리스도인들, 중국선교에도 큰 관심 복음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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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교회 그리스도인들, 중국선교에도 큰 관심 복음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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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2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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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초창기의 아시아 선교역사(II) -네스토리우스, 시리아정교회
▲ 조병하 교수

근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의 그리스도교 초기의 복음 선교는 앞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한다면 상당히 이른 시기에 이미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졌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지만 아직도 그것에 대한 지식은 매우 미약하다.

공식적으로는 사람들은 아시아의 복음 전래를 그리스도신앙논쟁으로 열렸던 431년 에베소회의의 결과로서, 네스토리우스를 극단적으로 추종하던 사람들이 정죄되고 국외추방이 결정되면서부터 이들에 의한 사산왕조 페르시아(224-651), 실크로드(기원전 202부터 기원후 8년까지 존재하였던 전한 때 처음으로 열린 길)를 따라 당시 당나라(618-907)까지 힘차게 확산되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네스토리우스의 추종자들이 로마제국(당나라에서 ‘대진’이라 칭함)으로부터 쫓겨나 사산조 페르시아로 이주했을 때 그 곳에는 이미 로마제국교회(동쪽, 비잔틴제국교회)로부터 정통교회로 인정을 받은 “동시리아교회”가 있었다. 페르시아의 호의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놀랍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리아정교회에서 484년과 486년에 개최되었던 교회회의들이 결의하여 수사생활의 영향을 억제하였고 동시에 성직자의 독신제도를 배척했던 일이 페르시아의 호의와 충동했다.

페르시아가 조로아스터교에 더욱 호의적인 정책을 펴면서 그리스도교는 점차 배척되게 되었다. 페르시아가 651년 이슬람교도국가에 의하여 멸망할 때까지 그곳에 살며 형성하였던 시리아 정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중국선교에도 큰 관심을 갖고 복음을 전하였다.

중국 선교의 시작은 공식적으로 635년 시리아교회의 수도사 알로펜(아라본, 아브라함)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당태종 때 알로펜이 페르시아왕국의 사절 단장으로 당나라 수도 장안에 도착하였다. 이때는 아라비아와 이슬람교의 세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양국이 상호 교류하였다. 알로펜은 당태종과 대신들 앞에서 설교하였고 당태종으로부터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도록 부탁받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나라 황제는 네스토리우스주의 수도원이 당나라 수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를 중국에 널리 전파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638년 7월 시리아정교 혹은 네스토리우스정교로 알려진 경교가 당나라에서 공인되었다.

당태종의 요청에 따라서 알로펜은 635년부터 641년까지 복음을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 메시아경’을 번역하였다. 650년에 즉위한 고종 때부터 845년 무종에 의하여 외래종교 대 박해 시까지 그리스도교(경교)는 당나라에서 놀랍게 성장하였다. 특히 고종 때는 그리스도교가 당의 중심종교로 낙양, 광주 등에 이르기까지 경교(광명정대함을 뜻함)라는 이름으로 확산되었다.

고종은 아라본을 진국대법주로 세우고 낙양에 경교사원(예배당)을 세우기도 하였는데 이로 인해 그곳에 있는 불교와 도교 지도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당시 일반 백성들은 페르시아종교(파사승)로 불교의 한 분파로 보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쓰였던 성경 주석에서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세존(오늘날 중국어 성경에는 상제)이라고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781년 2월 4일 제작되었던 시안(서안, 산시성)의 “대진경교유행 중국비”(당시 당나라 사람들은 로마제국을 대진이라 칭함)를 황제 덕종 때 당시 네스토리우스 선교사였던 경정이 글을 쓰고, 중국인 여수엄이 돌에 새겼다.

비문의 내용은 경교의 교리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죄악, 예수의 탄생 등과 635년부터 781년까지 중국에서의 선교약사, 경교의 의미가 광명이 충만한 종교라는 점, 황제들의 찬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당나라 무종 때 이 후 그리스도교가 금지되었고, 1625년 명나라(1368-1644) 말기에 이 “대진경교유행 중국비”가 발굴되었다. 사람들은 이 비문이 발굴되기 전에는 중국에 그리스도교의 전래를 확인하지 못했었다.

또한 1900년 청나라 때 중국과 서역의 교통 요지였던 돈황(뚠황)에서 왕씨가 석실을 청소하다가 1,130묶음의 문서들을 발견하였다. 이 문서들 중에는 410년 동진으로부터 1028년 북송까지의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는 불교, 도교, 경교, 마니교, 유대교, 유교 등의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언어, 법률, 의약, 천문에 관한 글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석실에 사람들은 서하가 송나라(960-1279)를 침략할 때에 값진 문화유산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봉해 버렸던 것이다. 경교의 서적은 8종이 알려졌다. ‘일신론’, ‘서청미시소경’, ‘대진경교선원지본경’, ‘대진경교삼성통진귀법찬’, ‘존경’ 등이다.

845년 그리스도교가 당나라에서 금지된 이 후에 원나라(1279-1368) 시기에 경교가 다시 전파되었다. 당나라 말기 박해로 피신했던 경교의 신자들은 돌궐 계통의 위그루, 네이산, 온구이트 족들이 몽골족을 따라와서 중국 원나라에서 다시 경교를 널리 전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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