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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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2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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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만으로 만족하기를 원하신다.
▲ 이경직 교수

오늘날 사람들도 이집트 사람들처럼 번영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개구리를 더욱 더 원한다. 멈출 줄 모르고 무한 질주하는 기차처럼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더 많이 얻는다고 반드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롯은 삼촌 아브라함과 함께 동거하는 삶을 누렸지만 그들의 소유가 많아지는 바람에 서로 떨어져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해서" 그에게는 에덴동산이나 이집트 평야처럼 좋아 보이는 소돔 평야였다.(창 13:6, 10-11) 그 결과 롯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의 포로가 되는 수모를 겪었으며(창 14:12), 두 딸과 함께 소돔 성을 급히 탈출해야 했으며(창 19:22), 두 딸이 그를 잠재우고 아기를 얻는 퍠륜을 저지르게까지 되었다(창 19:36).
이집트 사람들도 나일 강의 개구리들이 그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고서 더 많은 개구리를 원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들에게 개구리들을 주셨을 때 그 개구리들은 그들에게 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탐심의 죄악을 저지르는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다."(사 57:17, 21). 참된 평화는 지나친 탐심을 내려놓는데서 온다. 개구리 재앙을 통해 탐심을 치료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사 57:19).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하게 하셨다(빌4:11-12).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탐심을 죽일 수 있다. 탐심은 우상 숭배이다.(골 3:1-5) 탐심을 죽일 때 경건을 이익을 방도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된다."(딤전 6:5-6)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하는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는데 있다(눅12:15).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눅 12:21). 그러하기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갈 5:24). 예수님께서도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고까지 말씀하신다. 그러하기에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다."(시 37:16)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존중하며 지킨다. 요셉은 그의 주인 보디발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을" 때(창 39:6) 그의 분수를 지켰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을 때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요셉은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일을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는 범죄로 여겼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고별 유언을 통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신 19:14)고 경고하셨다. 이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 20:17; 신 5:21)는 열 번째 계명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사탄조차도 욥을 시험할 때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욥 1:12)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셨다(신 8:12-14). 그러한 경우는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이지만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 되는 경우이다(잠 14:24). 그럴 경우 차라리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편이 더 좋다.

우리도 외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더 중요한 가치들을 놓칠 수 있다. 바쁜 일정을 핑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못할 수 있다. 가족과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을, 주변의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에덴동산처럼 보이는 이집트 평야의 풍요를 뒤로 하고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는"(신 8:3)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 예수님도 세례 받으신 후에 성령께 이끌려 광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이 받았던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으며, 그들이 실패한 시험을 통과하셨다. 그리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선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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