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푹 주저앉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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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푹 주저앉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마”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5.14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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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 환자 돌보는 ‘더불어사는집’ 원장 이태훈 목사
▲ 마우스밖에 못 움직이지만 출판디자인을 하고 있는 신성우 환우와 함께 모니터를 보고 있는 이태훈 목사.

병에 걸렸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그래도 고칠 수 있는 병이라면 그나마 다행. 그런데 병의 원인도 모른다, 치료법도 아직 없다. 게다가 희귀하기까지 하다면, 우리는 이것을 ‘희귀 난치병’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알려진 희귀 난치병의 종류는 6,000여 종이라는 설만 있다. 그중에서도 근육병은 UN이 정한 5대 희귀 난치병 중에 하나.

인천 계양구 봉오대로 512번길에 있는 ‘더불어사는집’에 가면, 이렇게 희귀 난치병인 근육병 환자들을 수십 명 볼 수 있다. 대개 누워있거나 휠체어에 ‘매여’ 있다. 스스로 앉아 있을 수 있는 근육 힘이 없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엔 장애인 시설같이 보인다. 그러나 장애인보다 상태가 더 나쁘다. 내일이 어둡다. 이 병은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더 악화되는 쪽으로.

▲ 스스로 식사할 수 없는 환우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는 이 목사.
기침도 스스로 못해 악화
근육병 환자들은 대개 어렸을 때는 걸어 다닌다. 그러다 4-5세가 되면 잘 못 뛴다. 계단 오르는 게 힘들어지고 발뒤꿈치가 들리면서 3-5학년이 되면 주저앉게 된다. 17-18세가 되면 수저질이 어렵게 된다. 팔꿈치를 못 움직이고, 손목을 못 쓰고, 손가락조차 맘대로 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몸 안이다. 근육을 못 쓰면 호흡하기가 힘들어진다. 19-20세면 인공호흡기를 써야 한다. 심장에 펌프질도 어려워져 심장 강화제를 먹기 시작해야할 나이다. 감기는 치명적이다. ‘으흠’ 하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해서 먼지나 찌꺼기를 빼낼 수가 없다. 가래가 쌓이고 폐렴으로 발병된다. 소화기관 역시 문제를 일으킨다.

큰 눈이 퀭한 이곳 원장 이태훈 목사, 피곤해 보인다. 간밤에 이곳 환우 명선 씨를 데리고 병원 응급실을 다녀오느라 제대로 못잤다. 명선 씨 역시 아마 앞으로 경관급식을 하도록 몸에 튜브장치를 만들어 퇴원하게 될 것 같다. 근육을 못 쓰니 밥을 삼키기도 어렵다. 자꾸 사레들리다 보면 음식물이 폐로 들어가고 거기 염증이 생긴다.

이렇듯, 근육병 환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생기는 게 아니다. 되레 하나 둘씩 사라진다. 그 자리에 새로운 절망들이 똬리를 튼다. 이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더불어사는집’은 그 운명을 바꿔놓는 기쁜 소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보통 근육병 환자들은 일찍 세상을 떠난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꼭 그렇지 않아요. 여기 인공호흡기를 끼고 들어온 친구들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잘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여기서 많은 직원들이 정성껏 이들을 보살피죠. 집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해줄 수 없거든요. 또 영적으로도 믿음을 통해 희망을 주고 내적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하죠. 예배시간이면 제일 위층에 있는 예배당에 모두 올라와 예배드립니다. 누워서라도 예배드리죠. 질병 때문에 육신이 힘들어 고통스럽지만 영적인 자유함을 누리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 같아요.”

크고 작은 쿠션이 많은 까닭은
인공호흡기를 쓰고 누워 모니터를 보고 있는 신성우 환우.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바쁘게 일하고 있다. 그는 ‘푸른샘애드인쇄소’를 운영하는 편집디자이너. 겨우 컴퓨터 마우스밖에 움직일 수 없는 힘으로 매일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각종 서적과 팸플릿, 광고지들을 디자인하고 있는데, 그가 디자인한 컵라면 용기가 현재 시판되고 있다.

김진우 집사는 등단 시인이다. 벌써 세 번째 시집을 냈다. ‘희망의 실타래’라는 시집을 펴자, ‘시련의 행복’이 이렇게 삶을 예찬한다. ‘...환절기 시련의 바람에/ 떨어져버린 피멍든 낙엽이 서러워/ 눈시울 젖어와도/ 굳건한 새날의 의식을 소유하니/ 다가올 혹독한 계절은 걱정 없다/ 나 낙엽 짐이 슬픈/ 나무들의 대열에 어우러질 수 있다면/ 폭풍에 가지 꺾인/ 험한 옹이 많은 삶일지라도 행복하리라’.

원래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다는 환우들이 그 나이를 넘겨 아직도 이곳에서 잘 생활하고 있다. 단순히 생명 연장뿐만 아니라 삶의 질 또한 우수하다. IT기술의 혜택을 잘 누리는 환우들은 누워서 스마트 폰으로 또 다른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휠체어에 고정된 친구들은 눈만으로도 컴퓨터를 작동해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이곳을 둘러보면 크고 작은 쿠션들이 눈에 많이 띈다. 환우들이 이런 재미를 누릴 수 있도록 수고하는 직원들이 보인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환우들의 허리, 등, 다리, 어깨, 목 등 사방에 쿠션을 끼어 최적의 자세를 만들어준다. 그 자세 하나에 30분 이상 소비된다. 자는 시간에도 직원들은 환우들의 자세를 바꿔줘야 한다. 하룻밤에도 5-10번 이상. 손가락도 못 움직이는 이들, 고스란히 직원들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장애인 시설보다 훨씬 어렵죠. 뇌성마비 환자들도 못 일어나지만 혼자 뒤틀고 움직이는 건 가능하거든요. 집에서는 절대 이렇게 밤낮으로 근육병 환자들을 돌보지 못합니다. 정부에서는 시설을 없애고 환우들끼리 공동생활을 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아요. 한밤중에 돌보고 또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일을 어떻게 각자 집에서 할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에 이런 시설은 여기 한 군데 뿐이에요. 사실 여기 들어온 환우들은 행복한 겁니다.”

사재 털어 빚지고 지었는데
상처가 사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목사는 전남 진도에서 28세 총각 목사로 목회를 시작했다. 결혼해서 첫 아들 충만이를 낳았는데 아기 장단지치고는 너무 단단했다. 이상했다. 병원에서 근육병 판정을 받았다. 둘째 충은이 역시 같은 병이었다. 하늘이 캄캄했다. 하나님과 야곱처럼 씨름하는 세월이 시작됐다.

“아들을 통해서 다른 근육병 환자들과 부모님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근육병선교회를 만들어 근육병 물리치료 비디오도 제작해 배포하고 함께 음악회를 해서 모금한 돈도 환자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가족을 돕다가 그 아이가 하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어요.”

한 장애인 시설에 있었던 아이는 ‘3년 동안 지옥에 갔다 왔다’고 고백했다. 도와달라고 3번 부르면 더 이상 부르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자기 위로 넘어질까봐 매순간 공포에 떨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장애인 시설에선 근육병 환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정신이 멀쩡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근육병 환자만의 특성을 이해하고 보살필 시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 목사는 사재를 털어 빚까지 지면서 시설을 시작했다.

지난 2006년 지금의 건물을 건축했지만 빚이 7억이다. 조금씩 후원금이 들어오지만 그나마도 빚을 갚는 데는 쓸 수가 없다. 빚을 빨리 청산해야 국가로부터 정식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인등록이 가능하다. 이 목사는 후원자가 이자나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지정 기탁’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후원 문의 032-555-8636).

“근육병을 앓는 아이들도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믿는 아이들은 그래도 명랑하고 인사도 잘 해요. 안 믿는 아이는 우울하고 내성적입니다. 당연히 그 마음가짐에 따라서 병이 호전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하죠. 그래서 신앙이 중요합니다.”

어느 날, 제법 잘 걷던 아이가 푹, 주저 앉아버렸다. 병이 그만큼 진행된 거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이젠 평생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고, 휠체어 타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그 앞엔 첩첩산중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는다. 이곳은 ‘더불어사는집’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부축해서, 더불어 가줄 이들이, 여긴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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