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의 문화카럼] 목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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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문화카럼] 목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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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1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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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성지를 찾아서 (19)
▲ ⓒ방효성, 그발 강 가에 서서, 2013.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에게는 삶의 규범과 생활에 있어 윤리적, 도덕적, 신앙적 기대감이 목사에게 적용하는 잣대로 매겨져 왔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성숙한 신앙적 모범이 요구되는 속에 청소년기를 지나며 두 가지의 태도로 나눠진다. 목사의 아들로 순응하며 청교도적 삶으로 살아가기와 억눌린 감정이 일탈을 통하여 세상으로 나가게 되는 반항적 자기합리화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성경 말씀 중 구약 사무엘상에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에 대한 말씀이 있다. 행실이 나쁜 엘리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는 아마도 목회자 자녀들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목사의 아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 같았음을 알 수 있다.

국내외적으로 목사의 자녀 문제가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본다.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로 유명한 릭 워렌 목사의 아들이 정신 질환으로 자살을 한 사건이 있다. 목사의 아들이란 것에 충격이 더 컸다. 가족의 문제가 목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해석의 여지는 있지만 3개월 후 다시금 강단에 복귀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치유와 회복을 위한 격려가 쏟아졌다고 한다. 한국의 대형 교회 목사의 아들 이야기라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사탄은 목사를 우선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가장 큰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사탄은 목회의 권위를 실추시키기 위해 가족들 또한 예외가 아닌것이다.

한국에도 이제 3, 4대를 이어오는 목사의 가정이 나온다. 대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걷는 목회자 집안이 많이 있다. 쉽지 않은 길을 택한 분들이다.

목사는 성도들의 영적 지도자로 말씀의 꼴을 먹이며 목양을 하는 목회자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건 사명자들이다. 그러기에 권위와 더불어 더 많은 기대와 엄격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목사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 호칭에 따른 책임이 함께 따르는 것이다.

필자도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목회자 집안에서 자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과 고민이 많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 시절에는 목사아들이란 짐이 너무 무거웠으며 어쩌면 가장 듣고싶지 않은 호칭이었다. 그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다시금 궤도위로 돌아오게 되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실존적 자아를 이기고 신앙으로 복귀하는 긍정적 모습일 것이다. ‘목사 아들’이란 호칭이 자랑스럽다. 그 이름의 끝에는 복받은 삶이었다로 귀결되어 질 것이다.

장로로 섬기고 있는 지금도 필자를 부를때 목사 아들이란 호칭이 맨 앞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불려질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번 목사 아들이면 평생 목사 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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