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올라가려면 깊이 내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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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올라가려면 깊이 내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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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5.2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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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목사 (동네작은교회)

몇 해 전 늘 지나다니던 길옆에서 공사안내 표지판을 봤던 적이 있습니다. 표지판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수십 층은 되어 보이는 빌딩을 짓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다니다 우연히 담처럼 둘러쳐진 보행자 안전판 너머의 현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스라칠 정도로 놀라게 된 이유는 내가 걷는 이 도로 바로 옆으로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깊이로 지하를 파고 있는 중장비들과 사람들이 현장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나게 깊이 지하를 파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처음 보았던 빌딩의 조감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건물일수록 깊이 지하를 파야 하는 것이 건축의 상식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려고 합니다. 높이 올라가는 건물일수록 지하로 깊이 내려가야 하듯 높이 올라가려면 깊이 내려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높이 올라가는 목회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어 버렸고, 그것도 누가 더 빨리 올라갈 수 있느냐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있었습니다.

성공지상주의적인 관점과 방법론이 한국 교회를 지배하는 듯 보였고 수많은 목회자들도 그 방향으로만 목회를 생각했습니다. 결과로 보이는 화려함과 외적인 성공담이 신학교와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영웅담처럼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목회가 성공적이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것은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 깊이 내려갈 수 있는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목회는 깊이 내려가며 생생한 현장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인정하고 본받고 싶어하는 성경의 위인들은 전부 깊이 내려가는데 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깊이 내려간 곳은 바로 광야였습니다. 광야학교의 과정은 낮아짐과 겸손,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까지 기다리는 지난한 훈련의 현장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엘리야 등 신앙의 위인들은 전부 광야에서 굶주림과 외로움을 붙잡고 씨름했고, 변변치 못한 자들과 함께 지내며 믿음의 공동체를 일구어 내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야에서 굶주리고, 사탄의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을 비롯해 아라비아 광야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린 사도 바울도 깊이 내려감을 경험했습니다. 깊이 내려갈수록 부르심의 소명은 더욱 구체적이고 실제적이 될 수 있습니다.

성육신으로 인간의 세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존귀한 자리로 불러 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혜와 구원, 천국 등은 그분의 내려오심으로 우리가 올라갈 수 있게 된 은혜요 선물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업그레이드시켜주신 주님은 제자된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내려감으로 존귀케 되는것을 증명해 보이는 곳이고, 목회자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권위를 보여주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추구하는 높은 곳을 지향하는 삶이 아니라 낮은 자리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신학을 공부할 때 종종 선생님들과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목사가 되면 늘 세 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설교할 준비, 이사 갈 준비, 죽을 준비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말씀을 증거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고, 아무리 성공적인 사역을 하고 있더라도 성도들이 “이제 그만하고 나가달라”고 하면 두말없이 이사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목회가 아무리 재미있고 사역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도 주님께서 “그만하고 나한테 와라”고 말씀하시면 조용히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내려가려 하기보다는, 작음을 지향하기보다는 높이 올라가기를, 크게 키우기를 원하는 목회방법론이 교계를 지배하는 듯 보입니다. 먼저 내려가는 힘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올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또 올려 주시지 않으면 바로 그곳이 내가 서야 할 최종지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도 목회의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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