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필요성, 배려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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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필요성, 배려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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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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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 목사 (세계선교협의회 부총무)

지난 8년 동안 섬기던 에장 통합의 에큐메니칼 업무를 마감하고 새로운 부르심을 따라 싱가폴에 있는 세계선교협의회의 부총무일을 보기 시작한지 벌써 8개월이 다 지나간다. 지난 해 한국에서의 사역을 접고 싱가폴의 사역지로 옮겨올 때는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람들과의 적응도 차차 은혜롭게 진행되는 중이다. 싱가폴은 덥다.

많이 덥고 습도가 높아 불괘 지수도 높을 수 밖에 없으련만 이 곳 사람들은 느긋하고 평화스럽게만 보인다. 대부분의 더운 나라가 그렇듯이 이곳에서도 한국 스타일의 ‘빨리 빨리’는 좀 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성질 급한 나도 많이 반성하고 적응하는 중이다.

싱가폴에서 짧은 기간 지내면서 느낀 점을 한가지 나누고 싶다. 아마도 너무 성급한 느낌일 지도 모르고 사실과 다른 경우가 될 지도 모르지만… 싱가폴은 중국계 말레이지아 사람들이 세운나라이긴 하지만 지금은 다민족 국가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중국계 말레이지아 인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다음으로는 말레이지아 국민들, 인도 사람, 그리고 그외의 아시아인들과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사회이다.

싱가폴은 아직도 정당이 하나뿐인 국가로 좋게 말하면 단일정당의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좀 삐딱하게 볼라치면 단일 정당 독재이기도 한 독특한 나라이다. 국가의 철저한 계획과 배려 속에서 싱가폴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풍성한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물론 사회의 한 구석에서는 이주 노동자들의 빠른 유입으로 인구가 너무 많이 늘어서 좁은 땅과 자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비판이 터져나오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싱가폴 국민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많은 혜택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싱가폴 정부는 서로 다른 종교와 인종들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것에 큰 힘을 쏟고 있다. 싱가폴의 국가 공휴일을 보면 불교,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 교가 모두 이틀씩의 공휴일을 가지도록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나라가 지어서 제공하는 HDB라는 아파트들은 각 빌딩 별로 싱가폴국민, 말레이지아인, 인디안, 그외 인종들이 골고루 입주하도록 비율을 정해서 매매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심한 국가적 배려속에 살아가는 싱가폴 사람들은 참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같다. 세심한 배려가 참 좋은 것이긴 하지만 반드시,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별히 같은 사무실에 일하는 싱가폴인 직원들을 살펴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드는 것이다.

세계선교협의회의 사무실에는 약 25명의 실무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중 12명에서 13명은 싱가폴 현지의 직원으로 구성된다. 싱가폴인 직원들은 부지런하고 상냥하고 친절하다. 이런 모든 좋은 점들과 함께 싱가폴 직원들은 배려심이 많다. 그런데 그 배려심이 가끔은 도를 지나쳐 무관심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나머지 결국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 조차도 삼가하는 형태가 되곤한다.

누군가 구체적인 일감을 지시하기 전에는 그저 가만히 기다린다거나(아무일도 하지않으면서), 혹은 누군가에게 폐가 될까하여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이다. 진정한 배려란 상대방이나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고, 도움이 되어주는 것이라야 할것이다. 소극적으로 비위를 맞춰 주거나 무조건 찬성하는 것이 배려는 아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 ‘배려’일 것이다. 어디까지가 배려의 필요성인지, 어디가 배려의 한게인지 하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배려가 될것인가? 상대방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인정하되 진정한 진리를 외면하지 않는 한도에서의 배려, 나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의 배려, 그리고 다양성이 존중되고 창의력이 살아나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특별히 소수민족, 사회적 약자, 소수자, 그리고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배려를 생각할때 반드시 고려해야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소수자로 사회적 약자로, 여성으로서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를 베풀고자 할때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항목이 바로 스스로의 존엄성이라는 생각이다. 존엄성을 잃지 않으며 상대방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배려가 아쉽게 느껴지는 싱가폴이다. 배려깊은 싱가폴 사회속에서 문득 배려가 부족한 듯 느껴지기도 하는 한국이 그리워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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